붓다의 가르침과 생명평화의 길:
한국 불교의 사회참여
이명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인드라망연구소장
1994년 조계사에서 열린 3.29 법난 규탄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 (출처|『불교신문』) |
붓다의 삶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실천은
깨달음이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줘
붓다가 가르침을 설한 이후, 불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했다. 초기 불교, 부파불교, 아비달마 불교, 상좌부 불교, 대승불교, 밀교. 그래서인지 붓다가 설한 가르침은 후대에 방대한 경전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팔만대장경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붓다의 설법 형식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나 응병여약(應病與藥)으로 내용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더한다. 그래서 경전에는 때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이 발견된다. 어느 경전에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답을 거부했지만, 다른 경전에는 상세하게 설명한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교를 이해하는 방향이 어디를 향하든, 경전에서 근거를 찾아 제시할 수 있다.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경전에는 불교의 사회참여를 지지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어느 경전에는 사회참여보다는 내면 수행에 더욱 힘을 쏟으라는 가르침도 있다. 이러한 불교의 다양함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리의 이해와 해석에 앞서 불교의 시작, 즉 붓다의 생애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붓다는 출가할 때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붓다가 자신의 해탈을 위한 수행을 넘어, 깨달음을 얻은 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며, 동시에 타인과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려는 강한 의도를 담고 있다. 그래서 붓다는 다른 사람들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이는 불교의 주요 가치인 자비와 평등, 비폭력을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하려는 불교의 조직적 시도로 이어졌다. 붓다의 삶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실천은 깨달음이 사회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붓다의 탄생게(誕生偈),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에도 주목해야 한다. 탄생게는 생명의 존귀함과 중생 구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불자들이 주로 앞 구절인 “천상천하유아독존”만을 강조해, 마치 깨달음을 얻은 개인의 자아를 강조하는 의미로 오해되곤 한다.
문명사적으로 붓다는 신(神)을 향한 인류의 시선을 사람으로 돌린 축의 시대(Axial Age)를 열었던 사상가 중 한 명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축의 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여러 문명이 철학적, 종교적 전환을 경험한 시기로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성찰이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붓다는 고통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길을 고민했고, 당시 인도의 기존 브라만 전통과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며,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즉 붓다는 새로운 문명의 길을 보여주었고, 이를 승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증명했다.
환경오염과 자연생태계 파괴 문제 불교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해법 모색하며 대응…‘불교환경의제 21’ 발표하기도
불교의 핵심 가치들에 기초한 사회참여도 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서도 환경오염과 공해가 사회 문제로 주목받았고, 국가 주도의 대형 개발 사업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지역사회 붕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들이 늘었다. 개발 열풍이 사찰 주변 환경도 위협하면서, 수행 환경 보존이라는 현실 문제에 개별 사찰들이 직면했다. 사찰의 수행 환경에서부터 개발 사업에 의한 지역 환경, 자연생태계 파괴에 불교계는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불교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해법을 모색하고 대응했다. 불교의 대응은 종단 차원의 활동과 불교 기반 시민운동 두 영역에서 전개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초기부터 환경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응했다. 조계종은 2001년 환경위원회를 설치하고 종단의 환경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환경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생태 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사찰림과 사찰 환경보호 등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주목되는 사례는 ‘불교환경의제 21’이다. 종단의 환경위원회가 불교계의 다양한 환경 단체들과도 협력해, 생태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천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2006년에 ‘불교환경의제 21’(이하 의제 21)로 발표했다.
의제 21은 현대 사회에서 심화하고 있는 생태 위기를 불교적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반영하며, 불교계가 지구 생태계 보호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의제 21은 크게 5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사찰이 환경친화적 생활 방식을 실천하고 생태 사찰을 조성하며 수행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공동체와 연계해 환경 활동을 펼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의제 21이 종합적인 행동 계획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구체적인 실행 기구나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해, 문서화된 목표로 그치고 현실에 적용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생명평화 사상, 불교 생태 운동 넘어
한국 생태 운동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
불교의 생태 환경 운동은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 사상을 바탕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비인간 존재에게까지 확장하고 삼라만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불교적 실천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불교의 가치와 생태적 가치를 사회화하고 물질과 소유 중심, 이를 위한 개발과 성장 중심의 사회적 가치에 근본적 물음을 제기했다.
모든 생명은 상호 의존하고 상호 연결된 관계망에 있으며 모든 생명은 서로서로 평등한 관계이며 모든 생명은 평화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생명평화 사상은 불교 생태 운동을 넘어 한국 생태 운동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기후 위기 등 복합 위기로 인해 인류 절멸을 걱정하는 오늘날 생명평화 사상은 문명 전환 운동과 이 운동이 지향하는 생태 문명의 중요한 지향으로도 자리 잡았다. 생명평화 사상에 기반한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는 인간 중심의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단순 소박한 삶과 공동체적 삶(사부대중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문명 전환이라는 더 큰 차원의 사회변혁을 꿈꾸고 있다.
이명호|한양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신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한양대·동국대·중앙승가대 강사, 대한불교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 불교공동체 연구개발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인드라망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면서 한국교수불자연합회 학술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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