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불교와 거짓말, 구업(口業)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조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심리학 박사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꾸며내어 말하는 작화뿐만 아니라
사실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 생략도 포함된다
얼마 전에 모 법학전문대학원에 거짓말 탐지에 대한 특강을 하러 갔었다. 예비 법조인 학생들은 거짓말을 하는 나쁜 사람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평소에 거짓말을 안 하시는 분 계신가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몇 명이 손을 들었다. 훌륭한 법조인의 덕목 중에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게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학생들이 무척 반가웠다.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 약속 시간에 늦어 ‘5분 안에 도착해, 코앞이야’라고 말한 적 있나요?
- ‘있다가 할게’, ‘나중에 할게’라고 말해놓고 그 일을 하지 않은 적 있나요?
- ‘나는 안 먹어, 너 혼자 먹어’라고 말한 뒤 ‘딱 한 입’보다 더 먹은 적 있나요?
- 보험 상품이나 물건을 살 때 약관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고 ‘약관을 다 읽었으며 동의합니다’에 서명한 적 있나요?

이 질문들에 모두 ‘예’라고 답한 정직한 학생들은 자신들도 다양한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음을 알게 되자 겸연쩍어했다.

사람들은 평소 알게 모르게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하루 일과 후에 그날 있었던 사회적 상호 작용을 상세히 기록한 것을 보니, 하루에 한두 번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꾸며내어 말하는 것(작화, 作話)뿐만 아니라 사실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생략, 省略)도 포함한다.

거짓말은 자신이나 타인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또는 손해나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남의 신체나 재산에 피해를 준 범죄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변명하는 것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작화’ 형식의 거짓말이다. 타인의 부정 행위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소극적인 거짓말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자신의 관여를 최소화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생략’ 형식의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작화보다는 생략을 ‘덜 나쁜’ 거짓말로 인식하기 쉬운데, 결과의 비중으로 볼 때 ‘생략’의 거짓말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거짓말의 핵심 특징은 감추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생략의 결과도 엄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국민의 염원과 달리 자신이 경험한 과거 사실들을 끝까지 말하지 않고 무덤까지 가져간 인물들에 대해 단지 입이 무겁다고만 평가할 수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짓말의 색깔
거짓말의 종류는 다양한데, 흔히 색깔에 비유해 설명한다.

자신의 이득을 챙기거나 실수를 덮으려는 이기적인 거짓말은 검은색에 비유된다. 남의 돈을 모아서 큰 이익을 챙겨 주겠다고 약속하는 투자 사기꾼이나 음주운전을 해놓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는 범죄자는 검은색 거짓말쟁이다. 취업 면접에서 직무 관련 경험이 없음에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처럼 범죄자가 아닌 사람도 종종 검은색 거짓말을 한다. 만 3세 정도의 아동은 아빠가 아끼는 도자기 화병을 깨트린 뒤 누가 그랬는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선의의 거짓말은 깨끗한 백색에 비유된다. 실망스러운 선물을 받았으나 정말 마음에 든다고 표현하는 것,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아기가 어디서 나오느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은 엄마가 배꼽에서 나온다고 둘러대는 것 등은 타인을 보호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백색 거짓말이다. 만 7세 정도의 아동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과 더불어 백색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사회화 과정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백색 거짓말을 적절히 하도록 교육을 받으며 그것에 서툰 사람은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된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은 파란색 혹은 회색에 비유된다. 이때 보호받는 타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말한다. 조별 과제를 수행할 때 한 명의 조원이 개인 사정으로 작업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으나 보고서에는 모든 조원들의 이름을 적어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집단 구성원들에게는 관대하고 이타적인 반면, 외집단에게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너무 뻔해 보이지만 때로는 내부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외부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터무니없이 불 보듯 뻔한 거짓말은 빨간색에 비유된다. 금방 들통이 날 줄 알면서도 사실을 폭로하면 체면 손상이나 잃을 것이 너무 큰 경우에 끝까지 거짓말을 유지하려고 한다. 증거를 제시해도 모른다고 하고, 심지어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우기는 범죄자들은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가 있어 찾아보니 이런 가사가 있다:

다 알고 말한 건데 넌 또 거짓말을 해
어떻게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
모든 게 다 새빨간 니 뻔한 거짓말
자꾸만 새까매지는 맘
-‘새빨간 거짓말’ 중, 혜이니(Heyne)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은 요즘 시국에 이 가사가 왠지 모르게 다가온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의 방식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지만, 선의의 거짓말은 어느 정도 해도 괜찮은 걸까? 좋고 나쁜 거짓말의 기준은 결국 누구에게 무엇을 감추고 속이려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양심적인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삶의 만족도가 저하된다. 속이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잠시뿐이며, 속이는 행위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는 한 결국 죄책감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거짓말쟁이는 의도적으로 진실의 기억을 억눌러야 하고 무망 결에 진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100명의 남녀 성인에게 5일 동안 흑색 거짓말과 백색 거짓말 빈도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흥미로운 결과는 거짓말의 색깔에 상관없이 거짓말을 한 날에는 다른 날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도인 자기 존중감이 낮아졌고, 불안, 후회, 불행감 등 부정 정서가 높아진 반면 편안함, 행복감 등 긍정 정서는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거짓말의 색깔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정직하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의 방식임을 시사해준다.

정확한 거짓말 탐지는 매우 어려운 전문가의 영역이다. 보통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거짓말을 알게 되면 관계가 예전처럼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고, 때로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거나 듣고 살지만, 신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과는 진실의 원칙을 서로 지키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은경|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매디슨(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심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버클리대 방문교수,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경찰행정학부 교수 및 범죄심리학과 책임교수로 있으면서, 동 대학 법심리연구소 소장, 인공지능학과, 미래융합보안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또한 한국법심리학회 회장, 대법원 양형연구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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