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서 창발까지|정견(正見), 왜 중요한가?

연기에서 창발까지

김현구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정견은 합송할 수 있는 법이며 확언할 수 있는 견해
정견(正見)은 사성제(四聖諦) 중 마지막 도제(道諦)에서 팔정도(八正道)로 알려진 실천방안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어 우리에게 꽤 친숙한 용어다. 반면 정견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불교 철학의 정수를 다뤄야 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불교 개념에 속한다. 초기 불전에는 붓다가 직접 정견과 사견(邪見)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빠싸디카숫따(Pāsādikasutta)』에 따르면 붓다는 쭌다(Cunda)에게 자이나 교단의 교주로 알려진 니간타 나타풋타(Nigaṇṭha Nātaputta)의 죽음 이후 두 파로 분열한 자이나 교단의 소식을 전해 듣는 장면이 나온다. 니간타는 젊은 시절 육사외도(六師外道) 중 한 명인 산자야(Sañjaya)의 주석가였다. 그는 산자야의 주장이 지나치게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산자야가 오류를 피하기 위한 긍정적인 진술을 망설였던 것과는 달리 긍정 명제나 부정 명제가 모두 상대적이라고 주장(syādvāda)한 것으로 보인다.

붓다는 니간타의 상대론을 ‘어떤 진술이든 선택적으로만 인정하거나 상황 진술의 합이 곧 진리라는 주장으로 이 역시 대립되거나 모순된 견해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니간타 사후 자이나 교단의 분열을 그들의 모순 대립하는 교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불교는 대립되거나 모순된 견해들을 사견(micchadiṭṭhi)으로 간주하는데, 사(邪, miccha)란 일치하지 않는 또는 이율배반이다.

붓다는 모두가 의견이 일치해 합송(saṅgāyati)하는 법을 통해 분쟁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소개한다. 여기에서 모두가 일치하는 견해를 정견(sammādiṭṭhi)으로 간주하며, 정(正, sammā)이란 바른 또는 일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정견은 합송할 수 있는 법이며 확언할 수 있는 견해다. 붓다는 모순 대립하는 견해들이 정견이 아니면 논의하지 않으며, 오직 확언할 수 있는 가르침으로서 사성제를 천명한다.

차연성, 아트만과 브라흐만 주장하는 바라문교 비판하며 ‘무아’설로 확립
정견의 확립을 통해 우리는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히 알게 된다. 붓다에 따르면 사람의 괴로움은 실체적인 자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속적인 자아를 바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나를 항상 ‘동일한’ 사람(person)이자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정체성(identity)이 실재한다고 믿거나 그 배경에 불변의 존재를 상정하곤 한다. 붓다 당시 인도에서 이러한 태도는 아트만(ātman)류의 자아 관념으로 대표된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아트만류의 형이상학적 자아 관념과 제일원인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심리적 정체성을 변화하면서 단절 없이 설명할 수 있었다. 이는 ‘차연성(idapaccayatā)’을 통해 이루어졌다. 차연성에 근거한 사유방식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 uppada idaṃ uppajjati. Imasmim asati idam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이다. 연기설로도 알려진 이 가르침에 의지하면 누구라도 모든 존재 현상들이 원인과 조건 속에서 생멸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차연성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을 주장하는 바라문교를 비판하면서 ‘무아(無我: anātman)’설을 확립한다.

바렐라와 톰슨, 인식 구성하는 전 과정에
통합의 기능 수행하는 상위의 인식 기능 창발한다고 주장
창발 개념은 1980년대 이후 2세대 인지과학자들에게도 주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기능했다. 특히 바렐라(F. Varela)와 톰슨(E. Thompson)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 현상이란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으로 인식 주체 없는 인식 행위다. 그들의 주장 역시 창발 개념을 수용했으며, 인식을 구성하는 전 과정에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상위의 인식 기능이 창발한다고 주장한다.

인지 활동이 일어나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뉴런들은 하나씩 따로 떼어 생각하면 미미한 것이지만, 두뇌 활동의 총체적인 패턴으로 분명히 참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시각 대상 또는 시각 정보 파악의 기본적 기제는 ‘뉴런들의 조화적 협력체의 총합적 상태’의 창발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지란 단순한 구성 단위들의 연결망에서 통일된 전체 상태가 창발되는 것이며, 인지 활동은 각각의 구성 단위들의 작동을 규정하는 국부적인 규칙이나 구성 단위들 사이의 연결 강도를 조정하는 규칙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인지 활동에서 자신을 대상화하는 상위의 인식이 출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환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를 연장하는 통합체로서 ‘자기-특징 체계’를 구성한다. 즉 자신과 자신 아닌 것을 상호 특징하며 ‘나 만들기’를 지속한다. 이 과정에서 사고와 행위의 주체를 ‘나’라는 개념으로 지칭한다. 개념적으로 스스로를 자아라고 지칭하면서 변화하는 심신이 그 지칭의 기반을 이룬다. 여기에서 다섯 가지 정신-신체 현상(五蘊)이 자기-지칭의 대상이다.

또한 중추신경계의 ‘특수화된 비교 체계’를 통해 자기-특징을 확장한다. 특히 이 비교 체계는 신경계가 운동계로 내보낸 원심성 신호와 감각을 통해 수집한 구심성 신호들을 통합할 수 있는데, 신체 활동을 통해 생겨난 감각 신호들(reafference)이 ‘자아인 것’으로, 환경과 작용으로 생겨난 감각 신호들(exafference)을 ‘자아 아닌 것’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이 자아-특징의 과정이다. 활동을 위한 운동 신호를 감각 신호와 연결함으로써 신경계는 지각과 활동에서 자아와 자아 아닌 것을 주객 이원의 세계로 창출한다. 따라서 자기를 특징하는 내적 감각 수용 체계는 외부 환경(자아 아닌 것)과 관련해 신체 통합성(자아)을 유지하고, 내부의 신체 감각을 지속시켜 신체적 자아감을 창출한다. 이러한 창출 행위(enaction)를 토대로 ‘자아-투사(self-projection)’가 지속적으로 생물학적 신체에 대해 이루어지면서 자신을 사고와 행위의 주체로서 개체적인 동일성을 지닌 개별적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차연성이 자아에 대한 비실체적 접근을 이끌었듯이, 바렐라·톰슨 역시 창발이라는 사유를 통해 근세가 가정했던 몸과 마음의 이원적 실체론도, 실체적인 자아 관념도 거부한다. 그들에 따르면 자아는 두뇌와 몸, 세계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 과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실체성을 갖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지과학의 시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에서 인간 의식의 배후에 형이상학적 자아는 없으며 오직 과정적 행위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창발적 사유는 차연성만큼 지금의 우리에게 합의할 수 있는 정견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김현구|전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학술연구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에 『입중론 현전지』, 『철학의 이해』(공저)가 있고, 「분별에 관한 인지언어학적 접근」, 「『중론』 시간에 관한 고찰의 철학적 확장성에 대한 탐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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