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에 가면 우리 모두가 범어(梵魚)입니다, 범어사 등운곡(藤雲谷)|치유의 숲, 사찰림을 가다

범어사에 가면
우리 모두가
범어(梵魚)입니다

범어사 등운곡(藤雲谷)

글/사진 은적 작가

범어사 설법전 뒤뜰의 대나무숲. 설법전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

절집과 그곳에 사는 스님들은 우리 국토의 수호신장…
절집 주변의 숲은 임목 축적 높고, 생물종도 다양
절집 스님네들의 소임 가운데 하나로 ‘산감(山監)’이 있습니다. 요즘에야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지만 과거에는 산불 감시나 도벌을 막는 실질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산불이 나면 사중의 모든 스님이 불 끄기에 나섰으니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다 산감이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해인사 학인들은 축구 잘하기로 유명한데 그 내력인즉, 1960년대 초반 당시 주지였던 영암 스님(1907~1987)이 가야산 산불 진화에 나섰던 스님들이 기진맥진하는 것을 보고는 체력 단련을 위해 축구를 권장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하지요.

범어사 지장전 앞 담장과 원응료(범어사 승가대학) 지붕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농부를 ‘국토의 정원사’라 일컫는다 합니다. 듣고 나니, 농부가 다시 보입니다. 한낱 이름 하나가 농토의 경관적 가치와 농사의 심미성에 눈뜨게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는 모내기 후의 들판을 보고서야 봄이 다 익었음을 느낍니다. 가을 들판의 벼 단풍은 또 어떤지요. 내장산, 설악산 단풍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거기 있습니다.

범어사 입구 당간지주 옆 소나무숲

그동안 우리는 산감의 의미를 좁게, 겉보기로만 이해해왔습니다. 절집과 그곳에 사는 스님들은 우리 국토의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절집 주변의 숲은 국유림이나 사유림에 비해 임목 축적이 높고, 거기에 깃들어 사는 생물종도 더 다양합니다. 숲과 절이 한 몸을 이루어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사는 산과 숲 모두를 도량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조 억불 500년을 버텨낸 데는 한국 절집의 산감 정신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등운곡의 편백나무숲

1,000그루 이상 등나무가 무리 지어 사는 등운곡은
5월 초 보랏빛 꽃구름이 하늘을 이뤄
범어사는 금정산(800.8m) 중턱에 자리한 절입니다. 의상 스님(625~702)이 678년(신라 문무왕 18)에 화엄 10찰의 하나로 창건했습니다. 『삼국유사』는 금정산과 범어사의 관계를 ‘금정지범어(金井之梵漁)’라고 간략히 언급했지만,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사실과 전설을 씨와 날로 엮어 금정산의 이름 유래와 범어사의 창건 연기를 전합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3장(丈)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이렇게 산 이름을 지었고, 이로 말미암아 절을 짓고 범어사라 불렀다.”

등운곡 산책길 쉼터

범어사는 양 옆구리에 골짜기를 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남쪽 계곡은 ‘등운곡(藤雲谷)’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등나무꽃이 구름처럼 핀 모습을 표현한 이름입니다. 범어사 등운곡은 천연기념물(부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 1966년 지정)입니다. 동네 어귀, 학교 운동장 귀퉁이, 아파트 공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해빠진 등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 까닭은 6만5,520㎡(약 2만 평) 면적에 1,000그루 이상 등나무가 무리 지어 사는 곳은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5월 초 범어사 등운곡은 보랏빛 꽃구름이 하늘을 이룹니다.


행여 범어사에 가시더라도 등나무꽃에 연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든 좋습니다.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 초입 왼쪽으로 ‘등나무 군락지 관찰로’ 또는 ‘금정산 숲속 둘레길’ 안내 표식을 따라가면 호젓한 산책로(관찰로 825m, 걸어서 30분 정도)가 소나무숲, 편백나무숲, 활엽수림, 산죽숲으로 안내합니다. 한 바퀴로는 분명 아쉬울 겁니다.

금정산의 진정한 금샘[金井]은 범어사입니다. 그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범어(梵魚)’입니다. 범어사 등운곡은 범어가 유영하기 딱 좋은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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