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의 경계에 섰다면, 길 위에 몸을 맡겨보자|2024년 캠페인 ‘‘마음챙김하면서 걷자’’

안과 밖의 경계에 섰다면,
길 위에 몸을 맡겨보자

박정아
경북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연구원


간혹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그렇고, 누군가와의 소통이 어려울 때가 그렇다. 이른바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들이 뚜렷하거나 단일할 때는 그럭저럭 지나가지만, 얽히고설킬 때는 억지로 쥐고 있기보다 일단 지금의 공간을 벗어나 잠시라도 몸을 움직여보는 것이 상책일 수 있다.

문을 열고 깊게 한숨 들이마시고, 길게 한숨 내쉰다.

비록 의도를 지닌 숨이지만, 그 호흡을 따라 들썩이는 어깨나 가슴 그리고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코를 통해 들어온 숨이 몸의 끄트머리에 있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까지 전하는 아득함도 느껴본다.

그리고 이제, 내 앞에 펼쳐진 길을 한번 스윽 바라보고서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사람들이 오가는 길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그러나 사람과 차를 피하느라 몸의 감각보다 안전에 더 집중해야 하는 길이라면, 일부러라도 피해 한적한 길을 선택한다. 익숙한 길은 몸이 저절로 알아서 가기 때문에 상념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낯익은 길보다는 가끔 가보았거나 혹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다른 길을 골라 따라간다.

다소 생소하지만 한가로운 길.

그 길은 몸의 안과 밖을 감각하기에 적합하다. 그런 길을 찾는 것은 몸과 관계하는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마음의 경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의도를 내는 것이기도 하다. 습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있는 시간과 공간을 따라 펼쳐지는 세계와의 접촉을 위한 의식적인 과정이다.

몸은 어제 거기 또는 내일 저기가 아닌, 지금 여기와 관계한다. 어제의 것도 아니고 미래의 것도 아니며, 거기의 것도 아니고 저기의 것도 아닌,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Now and Here)의 세계와 닿는 지점이 몸이다. 이때 몸은 세계에 참여한다.

몸의 요구에 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의 요구를 알아주는 방식이다. 이 순간의 세계와 만나는 몸과 몸의 요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몸의 저항을 외면하거나 바꾸지 않고 단지 알아차리고 친절히 그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몸이 향하는 곳이나 몸과 관계하는 세계를 비판단적으로 찬찬히 살핀다.

현란하게 우뚝 솟은 빌딩들 사이를 누비는 바람이 뺨과 손등에 닿는다. 그때마다 피부의 얇은 솜털이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린다. 후미진 골목 한 귀퉁이에 아스팔트를 뚫고 삐죽이 솟은 이름 모를 풀이 보인다. 가녀린 줄기 끝에 모가지를 길게 내민 꽃 한 송이가 아슬아슬한 가운데 환하게 매달려 있다.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하늘을 맴도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 시린 공기를 가르느라 퍼덕거리는 날갯짓과 평화롭게 어울려 있다.

행복해서 웃는가. 입 주변의 근육이 입꼬리를 당기고 그 덕에 광대의 솟음을 느끼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아는가. 슬퍼서 우는가. 또르르 뺨을 타고 흐르는 얇은 물줄기를 느끼는 것으로 슬프다고 아는가. 무엇이 선후(先後)이건 지금 여기에서의 세계와 만나는 몸이 느끼는 그것으로 마음은 전개된다.

글로만 읽고 안다고 여겼던 존재들, 내 곁에서 함께하고 있었던 몰랐던 존재들, 관념 속에 박제된 이미지와 동일시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존재들. 이 모든 존재가 이 공간을 공유하는 무한의 세계 속에서 몸과 어우러져 지극히 당연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장벽만 같았던 경계가 스르륵 무너진다.

다른 세계에 있는 줄만 알았던 상상의 세계가 이미 여기 몸의 세계 안에 있었음을 안다.

이들과의 만남을 굳이 언어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말할 수 없는 세계를 품고 있는 몸을 그대로 알고 그대로 느끼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이 순간 몸 밖의 세상과 몸 안의 세상들이 무한히 펼쳐지는 모습을 알아차리고 느껴보기만 하면 된다.

몸은 시시각각 마주치는 모든 것을 느낀다. 몸을 알고 느끼는 연습은 지금 이 순간 몸과 세계와의 만남을 가능한 한 왜곡하지 않기 위함이다. 개념이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경계에 서 있다면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 그 너머로 향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몸을 일으켜 길을 나서보자.

박정아
재활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20여 년째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면서 인도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성장을 향해 오랜 시간 한국, 인도, 미얀마 등을 다니며 명상을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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