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나의 불교 이야기

경전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유학길에 올라

수진 스님
일본 고마자와대 대학원 박사 과정


“너는 교학과 인연이 깊다”는 수덕사 방장 스님의 말씀 깊이 새겨
유년 시절을 절에서 보낸 인연으로 법당에서의 추억이 많다. 아무도 없는 빈 법당에서 작은 경상에 낡은 서책을 펴놓고 옛 선비들의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그대로 드러누워 법당 천장의 벽화를 보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폈다. 향 내음이 가득한 허공에서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흩날리며 날아다니는 천녀들의 피리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필자에게 불교는 매우 친근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출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한국 불교 제1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見性庵)은 유난히도 목소리가 크신 노스님들이 주석하시는 곳으로 유명하다. 작은 체구에서 울려 퍼지는 카랑카랑한 노스님들의 호통 소리는 온 도량을 진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도 따뜻한 노스님의 자비심을 느꼈다. 그 덕분에 낯설고 힘든 행자 생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사히 행자 기간을 마치고 나자 어른 스님들께서는 전통 강원에 가기를 추천하셨다. 어느 강원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수덕사 방장 스님께서 “너는 교학과 인연이 깊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깊이 새기고 동학사 강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문 불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고전 한문과 일본어 공부
동학사에서는 그해 새로운 교육제도에 맞춰서 일본 유학파 출신의 스님들을 강사로 영입했다. 그래서 그분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접하게 되었다.

동학사는 예로부터 경전 공부로 유명한 전통 강원이다. 강사 스님들은 한결같이 한문 불전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참선 수행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강사 스님 중 한 분께서는 경전 공부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필자에게 전문적으로 한문 불전을 연구하는 동국대학교 한국불교융합학과를 추천해주셨다.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불교융합학과에 입학한 후 느낀 점은 한문 불전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고전 한문에 대한 기초 지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고전번역원 출신 선배 스님들의 적극적인 조언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의 입학시험을 준비했고 고전 한문의 기초를 충실하게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불교융합학과의 일본 유학파 교수님들께서는 동아시아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 일본어 습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대학원 2년 차 과정에는 일본어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본어 원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일본어능력시험까지 쳐보라는 학과 선배의 조언을 받아 일본어능력시험자격증도 획득했다.

범망계 연구 위해 일본 유학 결심
학위 논문의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중국 당대의 화엄학자 전오(傳奧) 스님의 『범망경(梵網経)』 주석서인 『범망경기(梵網経記)』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해서 범망계(梵網戒)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오 스님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가던 중 전오 스님의 『범망경기』 판본(版本)이 일본 소재의 대학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판본을 구할 목적으로 일본의 고마자와(駒澤) 대학으로 갔지만, 범망계에 대한 선행 연구 자료가 풍부한 일본에서 더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듬해에 정식으로 입학 수순을 밟았다.

고마자와 대학은 역사적으로 한국과의 관련이 깊다. 그리고 한국에서 화엄학자로 유명한 이시이 고세이(石井公成) 선생님과 중국 유식학 분야에서 저명한 요시무라 마코토(吉村誠) 선생님이 주석하고 있는 유서 깊은 불교 대학이다.

2019년에 입학한 그 이듬해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도서관마저 폐쇄되어버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석사 논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상황은 오롯이 학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했고 무사히 석사 과정을 졸업하게 되었다.

고마자와 대학은 한국인 승려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선배 스님들이 모범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자와 대학원장님이신 쓰노다 다이류(角田泰隆) 선생님께서는 유학 생활을 통해서 여러 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현재 지도교수님은 일본인 중에서도 특히 꼼꼼하고 엄격하게 지도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의 필자는 짧은 시간 안에 되도록 빨리 결과를 내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그러한 태도는 성급하다는 인상과 함께 경솔하다고까지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유에 사유를 거듭해서 스스로 명확하게 이해한 후 반복해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결론을 내는 것이 학자로서의 바람직한 태도임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최대한 실수와 오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정규 학기 이후로 몇 년간 더 일본에 남아서 함께 연구하기를 추천하신다. 연구란 자고로 시간과 공을 들여 꼼꼼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생에게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23년 새로 생긴 대원상(大圓賞) 특별정진상 수상은 그동안 타국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힘들게 공부했던 것에 대한 큰 보람이며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한국 불교학의 미래를 위해, 특히 범망계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연구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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