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행동, 과연 내 탓일까? |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 특강

뇌로부터의 자유 :
내 탓인가, 뇌 탓인가?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

나의 생각과 행동, 과연 내 탓일까 뇌 탓일까?
우리는 우리 행동의 진짜 주체일까?
“우리는 자기 행동의 주체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세계적 뇌 신경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한국에서 만난 청중들에게 이와 같은 첫 질문을 건넸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지, 그것의 진실 여부를 묻는 물음이었다.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는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습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자유의지에 대해 ‘인간 행동의 개인적 선택의 표현일 뿐 물리적 힘이나 운명, 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혹은 ‘당신에게 명령하는 건 당신 자신의 자아이며, 뇌에 있는 지휘 사령부이고, 인간에게는 인과관계로부터 달아날 특별한 자유가 있다’ 등 다양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가자니가 교수에 따르면 이들 철학자들의 주장은, 결국 우리 뇌 안에 작은 사람이 들어앉아있고 그가 명령하는 대로 우리 각자가 움직이는 것이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겐 정말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가자니가 교수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전, 그보다 앞서 생각할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가?’이다.

“저는 이 강연을 통해 자유의지가 쓸모없는 개념이라는 주장을 펼칠 겁니다. 왜냐하면 뇌는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정신작용이 가능하도록 하거든요. 우리가 그동안 생각한, 우리 자신을 주관한다고 생각한 ‘나’ 라는 개념은 사실 병렬 분산적인 뇌의 작용인 셈이죠.”

뇌는 자동적이다. 그러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강연을 통해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는 청중들에게 ‘뇌의 메커니즘에 따라 취한 행동, 그 결과가 사회질서에 반할 때 사법적 책임은 과연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고대 사상가인 루크레티우스는 결정론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전,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모든 움직임이 서로 연결돼 있다면 결정적인 질서에 따라 이전 것에서 새것이 발생한다.’ 그 후로 2,000년간 코페르니쿠스와 뉴턴, 다윈과 아인슈타인의 시대를 지나 현대의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뇌를 결정론적이고 기계적으로 보는 견해는 계속됐죠. 그래서인지 오늘날 과학은 대다수의 분야에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어요. ‘나는 자유의지를 믿지 않는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걸 인식하면 나 자신과 동료들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행동하고 결정하는 건 개인이 아니니까. 자제심을 잃을 때도 부끄럽지 않다’고요.”

하지만 뇌에 대한 기계론적 입장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해서 법적으로도 과연 적절할까? 이에 대해 가자니가 교수는 결정론적 입장으로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뇌는 그저 빈 서판일까?
가자니가 교수에 따르면 뇌의 작용에 대한 개념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칼 래슐리와 도널드 헵으로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이 분야의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첨예하게 내세웠다. ‘뇌는 빈 서판이며 크게 변형될 수 있는가?’, ‘뇌에는 여러 제약이 있으며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가?’ 라는 주제로 50년 이상 토론한 것이다.

“래슐리는 뇌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핵심 원리는 뇌의 ‘양자용설’이에요. 뇌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특정 부위에 있는 뇌의 양이라는 것이죠. 또 ‘동등 잠재력’이라는 개념도 내세웠습니다. 대뇌피질의 모든 영역은 정확한 지시와 경험만 있으면 어떤 기능이든 담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행동주의의 창시자인 존 왓슨의 유명한 말이 있죠. ‘어떤 아기든 나에게 주면 어떤 사람으로든 만들 수 있다’. 적절한 자극과 반응을 통해 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죠. 이는 환경이 뇌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입장입니다.”

이후 등장한 신경생물학자 로저 스페리 박사는 위의 주장을 반박했다. 뇌는 아주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스페리 박사는 뇌의 발달에 유전적 통제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한 실험을 진행했다. 개구리의 눈을 180도 뒤집어서 윗부분이 아래로 가고, 아래가 위로 가게 한 후 눈앞에 파리를 매달아놓은 후 개구리가 혀를 반대 방향으로 내미는지 관찰한 것이다.

“개구리는 눈이 뒤집혀도 혀를 제대로 내밀었습니다. 개구리의 눈이 두뇌에 제공하는 정보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였죠. 이를 통해 스페리 박사는 눈의 특정 부위는 언제나 뇌의 특정 부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신경을 뇌의 다른 부위에 연결해도 뉴런은 언제나 유전 지도에 의해 결정된 원래 위치를 찾아갔죠. 스페리의 연구 결과는 ‘뇌의 형성에 과한 개념’을 완전히 흔들었습니다. 이후 신경 특정성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뇌의 상당 부분은 이미 결정된 구조라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정신 & 사회적 상호작용’
“인간의 정신과 사회적 상호작용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사건의 연쇄반응으로 인간 행동이 결정된다고 보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의 경우 뇌의 국소 부위에 병변이 있습니다. 그 영역이 지속적으로 손상돼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거죠. 신경생물학자 로저 스페리 박사는 ‘우리는 결정론적 세상에 산다. 하지만 뇌는 외부적 힘에 의해 붙잡혀 있는 볼모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는 ‘사회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질문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저는 이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책임은 사회적 계층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자니가 교수는 “인간은 온갖 것들을 사회적 계층으로 업로드한다”며 “다른 인간들과 맺는 상호작용의 차원, 바로 거기서 책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뇌는 자유롭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맺은 계약을 실행하지 못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 문화가 정한 규칙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인간 행동의 주체가 누구이고 범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질문을 받을 때 신경과학은 적절한 해결 방법을 만들어 교정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개인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물어서 처벌해야 할까요, 치료하고 용서해야 할까요. 아니면 격리해야 할까요? 이건 우리가 정할 문제입니다. 여러분과 저, 우리 모두의 일인 거죠. 자유의지와 사회적 책임은 단순한 ‘뇌’가 아닌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연관돼 있어요. 따라서 뇌의 이상으로 인한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죠.”

이 글은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심리학, 인간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기획한 강연 시리즈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UC 샌타 바버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심리학과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S. Gazzaniga) 교수의 강연 내용을 본지에서 취재해 정리한 것이다.

취재·정리|황정은(객원 기자), 사진 제공|플라톤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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