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 수행과 심리 치료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
살아오면서 그리고 의사로 활동하면서 크게 영향받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양의 정신 치료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의 명상이다. 필자는 정신의 거듭 태어남과 영적 정화가 진정한 구원의 길임을 명상을 통해 배웠고, 그 원리가 정신 치료와 같음을 체험했다. 명상과 정신 치료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있는 그대로 봄’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생각은 생각일 뿐임을 알게 되고, 생각함은 있지만 생각하는 자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정신 치료의 대전제이기도 하고 또한 불교의 수행이기도 하다.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통찰
불교의 수행은 정신적인 번뇌를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심리 치료의 본질을 지닌다. 사성제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도(道)는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 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 가지 수행법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일곱 번째 바른 관찰(정념)과 여덟 번째 바른 집중(정정)은 밝은 지혜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명상(수행)의 두 바퀴인 집중과 통찰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겸비해야 될 요건인 것이다. 집중은 마음에 여러 사념들이 멈추게 되고 부글부글 끓는 탐욕과 분노가 고요해지며 마침내 제거된다. 이른바 사무량심이 충만한 상태가 된다.
통찰은 이렇게 잘 집중되고 맑아진 마음으로 탐욕과 분노의 본성을 꿰뚫어 관찰해 지혜를 얻는 수행이다. 이것은 해탈의 여섯 단계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감관의 제어는 계행의 기초가 되고, 계행은 올바른 집중의 기초를 제공하고, 올바른 집중은 신체적 정신적 현상의 진정한 본성을 아는 기초를 제공하고, 신체적 정신적 현상의 본성을 알면 망상이 제거되어 집착에서 벗어나고, 망상이 제거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면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이 생겨난다.” 여기에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집중 명상(수행)에 의해 모든 탐욕이 제거되고 통찰 명상에 의해 지혜가 계발되어 망상과 무지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은 집중 명상이 수행자의 인격(戒)과 관련이 있고 통찰 명상이 수행자의 지혜(慧)와 관련 있음을 말한다.
통찰 명상 또는 통찰 수행의 목적은 ‘중생을 청정케 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케하고, 괴로움과 근심을 소멸케 하며, 올바른 길에 이르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며, 통찰 수행의 도구는 ‘분명한 앎과 주의 깊음’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분명한 앎과 주의 깊음을 가지고 수행자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탐착하는 마음과 혐오하는 마음 없이 관찰한다. 이것이 통찰 수행이다. 통찰 수행은 통찰의 순서를 몸으로부터 시작해 법에 대한 관찰로 마무리하는데, 몸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해 나라는 망상과 나라는 뿌리 깊은 의식 성향을 제거할 수 있다고 앙굿따라 니까야는 말한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섯 가지의 신체적 감각(眼. 耳. 鼻. 舌. 身)의 영역과 마음(意)이라는 여섯 번째 정신적 감각의 영역을 통해서 만난다. 접촉이 어떤 감각 영역에서 일어나면 곧 느낌(受)이 발생한다. 좋은 느낌이 일어나면 집착이 일어나고 싫은 느낌이 일어나면 배척이 일어난다. 이런 반응은 온전히 깨어 주의 깊게 바라보는 통찰 수행으로 자각하기 전에는 무수히 반복되면서 조건화된다. 이렇게 조건화된 느낌들은 복잡한 인식의 과정을 거쳐 망상으로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접촉을 통해 느낌이 생성된 이후에 이 느낌에 대한 통찰이 바르게 나타나지 않으면 망상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의 생겨남으로 발전해 결국에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나이다’ 등의 자아 관념이 형성된다.
법에 대한 통찰에서도 우선 다섯 가지 장애를 통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경우에도 안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있으면 ‘나에게 안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분명히 알고, 아직 없었던 욕망이 생겨나면 생겨나는 대로 그것을 분명히 알고, 이미 생겨난 욕망을 버리면 버리는 대로 그것을 분명히 안다. 이리하여 고통에 대해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고 완전히 이해해 마침내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통찰 수행이다. 불교 명상 수행은 계정혜 삼학 가운데 정학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계학과 혜학을 아우르고 있으므로, 자각되지 않은 어두움의 고통으로부터 밝은 지혜로 이끄는 해방의 (치료적) 원리다.
심리 치료에 대한 통찰
심리 치료는 한 인간으로서 환자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치료자는 환자가 보여주는 현실을 단 하나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하며, 발전하고 있는 치료 과정을 향해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의 모든 연상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요 동기들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면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과 해석되어야 할 것을 알아내야 한다. 치료자는 사람 대신에 증상을 분석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증상은 하나의 상징이다. 증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치료자와 환자는 함께 작업한다. 환자는 어린 시절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받아, 어린이로 남아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성장을 포기하거나, 원래의 대상에 대한 증오심이 억압되어 대상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다. 이런 요인들이 무의식에 갇혀 있고 자각되지 않는 한 다양한 증상이나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빚게 된다. 이때 훈련된 치료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런 요인들을 자각하고 통찰해 갈등을 극복하게 된다.
무의식적 갈등을 의식 세계로 끌어내 풀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저항에 부딪히고 애증이 교차한다. 환자의 성장 과정에서 입은 정서적 상처와 왜곡된 행동 반응들을 환자 스스로 깨닫고 수정해가는 데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공감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는 긴 치료의 여정을 견딜 수 있는 추진력이 된다. 수용적인 태도는 환자가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왜곡된 유아적 양식이 동원될 때 환자가 어린이임을 허용하는 태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환자의 성숙한 자아 밑에서 작용하는 왜곡된 유아적 양식을 부모나 가족과 달리 융통성 있고 부드럽게 다룸으로써 환자의 가혹한 자기 처벌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치료자가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고 배려함이며 충분히 수용함이다. 이런 태도가 정신 치료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환자와 치료자 사이의 신뢰를 쌓이게 한다. 기본적인 신뢰를 쌓지 못하면 깊은 속내를 내보이기가 어렵다.
치료자가 우호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 것만으로는 환자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를 어느 정도 위로받지만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치유에 이르지는 못한다. 분석적 치료의 가장 큰 무기는 해석, 곧 통찰과 이해다. 치료자에게 나타내는 환자의 감정은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것은 치료자의 전문 영역으로 다년간 훈련받고 경험해야 얻어질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이 정당하게 이해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치료자의 따뜻하고 친절함에서 얻는 것보다 많은 위안과 확신과 만족감을 준다.
만약 문제 이면에 있는 주요 동기와 감정이 초기 면담에서 발견된다면 정신 치료를 하겠다는 동기는 굳어질 것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유쾌한 진실을 직면하는 일은 적절히 이해받는다는 느낌에 의해서 보상받게 될 것이다. 심리 치료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치료를 돕는 긍정적 힘이고 하나는 치료를 결렬시키는 부정적 힘이다.
환자는 치료자가 모든 것을 아는 전지전능한 신 같은 존재이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대했던 것과 같이 치료자를 대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치료자에게 의존하고 복종하고 두려워하거나 존경한다. 그러므로 만약 치료자가 그 자신 속에 지속되고 있는 유아적인 면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면 치료자는 이것을 아주 즐기게 되거나,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해주려 하고 해석해주려 할 것이다.
명상 수행과 심리 치료
명상 수행은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 있게 한다. 치료 또한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의 집중, 마음의 평정이 깨달음의 기초가 되는 것처럼 치료자는 환자에게 온전히 집중하되 열려 있어야 하며 환자의 긍정적, 부정적 반응에 대응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태도로 환자의 내면의 동기를 이해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치료자가 흔들림 없이 환자의 내면을 관찰하는 태도는 통찰 수행에서 탐착과 혐오를 떠나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자의 태도와 다름 아니다.
집중 명상은 마음의 탐심이나 진심은 제어할 수 있지만 근원적 깨달음은 통찰 수행 등을 통해 일어나는 것처럼, 정신 치료에서도 치료자의 우호적이고 평등한 태도만으로는 치료가 완성되지 않고 갈등의 근원을 직면해 명료화하고 해석을 통해 갈등의 의미를 통찰함으로써 치료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흐름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바로 통찰 수행의 수념처(受念處)와 심념처(心念處)수행과 다르지 않다.
심리 치료의 통찰은 공감적 조율에 바탕을 둔 갈등의 무의식적 파생물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신의 행동 패턴에 대한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통찰 수행으로 고의 발생과 그 원인과 고의 소멸과 그 소멸시키는 방법까지 분명한 앎과 봄을 실현시키는 것은 심리 치료의 깊은 분석과 이해, 그리고 통찰과 같다.
있는 그대로의 신체적 정신적 과정들을 바로 보는 통찰 수행은 삶 속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반응 사이에 공간을 제공한다. 통찰 명상은 어떠한 고통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사건에 반응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을 볼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통찰력은 점점 발전해 의도적으로 지켜보려는 노력 없이도 현재에 몰입할 수 있다. 이러한 몰입은 의식적으로 관찰자를 동원하려는 에너지를 절약케 해주고, 꿈이나 백일몽으로 도피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저축할 수 있게 된다. 끊임없는 비평과 재잘거림이 점점 사라지고 정신은 건강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지금 여기’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때에 ‘나’라거나 ‘나의 것’이라는 생각은 설 틈이 없게 된다. 이리하여 모든 사물과 경험에 대한 직관을 통해 사물의 세 가지 본성에 대한 통찰을 이루게 된다.
뚜렷한 자아에 의해 자타가 분리되는 이원론으로부터 해방되는 명상의 깨달음은 심리 치료에서 얻는 통찰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자기에 대한 이해와 자각, 그리고 통찰은 곧 불교 명상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구체적 표현이자 심리 치료의 원리이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치료자의 무지에 의해 무의식적 욕망의 충족에 불과할 수있는 여러 행위를 환자에게 표출하면 결국 치료는 성공할 수 없고 자칫 치료자에게 종속되고 의존되는 환자(또는 신자)를 만들 위험이 있다. 심리 치료는 깊은 이해와 자각이다. 자신의 내적 자원과 책임감이 중요하다. 불교의 구경각(究竟覺)이나 본각(本覺)의 수준에서는 언어를 들이댈 수 없으나, 시각(始覺)의 수행 중간 과정에서는 무수한 깨달음이 존재한다.
그것은 해오적(解悟的)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심리 치료에서 얻는 통찰과 다를 게 없다. 법념처(法念處) 수행에서 사성제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바로 봄은 무의식적으로 조건화된 뿌리 깊은 경향성을 알아차리고 깊이 이해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 과정 그 자체이다.
명상의 임상 적용 사례
명상과 심리 치료의 만남을 활용해, 필자는 내원한 이들을 치료한다. 필자는 집중 명상과 통찰 명상을 많이 적용했는데, 여기에서는 긍정적 결과를 보인 사례를 두 개 소개한다.
26세 여대 휴학생은 주요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 이곳에 오기 3년 전부터 세 군데 정신과에서 항울제 약물 치료 등을 받았으나 실패하고 본원으로 왔다. 처음 왔을 때 환자는 자살만 생각하고 아무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새로운 항울제를 투여하면서 명상 프로그램 참석을 유도했다. 그것에서 좋은 경험을 한 환자는 병실에서도 수시로 혼자 명상을 연습했고 아주 빠른 속도로 기분이 나아지고 의욕을 회복했다. 마침내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퇴원했다. 이 사례는 새로운 항울제의 효과가 발현되기 이전에 증세가 호전된 것으로 명상이 만성 우울을 극적으로 역전시킨 예였다. 그녀가 퇴원 후 학교에 복학해 잘 적응하면서 다니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제가 일어나면 언제든지 필자를 방문토록 약속하고 집 근처 병원에서 유지 치료를 받도록 했다. 이 환자는 고전적인 약물 치료에 덧붙여 호흡 명상을 시행한 경우로 우울한 정서를 밝게 하는데 극적인 효과를 본 경우이다. 다만 필자는 그동안 완고한 우울증 경력을 고려해 항울제 치료를 유지하도록 했다.
32세의 남자는 대학 3학년 때 발병했고 이후 6년 동안 입원을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그의 병은 약물 치료 중단 후 2~3개월 만에 피해망상과 환청 등이 심해지고 부모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망상형 정신분열병으로 악화됐다. 필자는 이 환자의 급성 증상이 어느 정도 소실된 후부터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토록 했으나 처음에는 다리도 아프고 지루해서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참석했을 때 정신이 하나로 집중되는 느낌을 경험하고 이 경험이 좋아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환자는 스스로 하루 한두 시간씩 명상을 하면서 처음엔 오히려 망상 등이 더욱 떠올랐으나 치료자의 지시에 따라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넓어지고 차분해지고. 깨끗해진 것 같다고 말했고, 그동안 엉뚱한 생각과 싸우고 없애려고 애를 썼는데 그냥 충분히 표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용기를 주게 된다고 했으며, 사람들을 볼 때 정성을 다하게 된다고도 했다. 이 환자는 입원한 지 6개월 만에 통원 치료로 전환되었다. 점점 좋은 느낌이 드는데 계단식으로 좋아지는 걸 체험했다고 했으며, 무척 놀라운 경험이라 말했다. 대인관계도 원만해져서 직장도 바꾸지 않게 되었고 부모와도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했다. 매일 2시간 정도 명상을 하고 병을 받아들이기로 한 후 약 복용도 어김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였다. 정신분열병은 통상적으로 명상을 적용하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이 환자도 명상하고 나서 편안하고 고요한 느낌으로 열심히 명상을 했지만 여러 망상적인 생각들이 중간에 활발하게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치료자의 개입으로 망상이나 환상적 생각들을 두려워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가 익어가면서 점점 그런 생각들을 담담하게 봄으로써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상호 보완적인 불교 수행과 정신 치료
심리 치료나 명상 수행은 이론이나 설법이 아니다. 심리학적 지식도 완벽한 불교적 이론도 정신적 고뇌 앞에서는 무력하다. 심리 치료와 명상 수행이 필요한 이유다. 양자 모두 깊은 이해와 자각이 치유적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핵심 요건이다. 믿음으로 시작할 수는 있으나 완성할 수 없다. 오직 통찰과 깨달음으로 완성할 수 있다. 불교의 깨달음도 이해의 확장이다. 그 끝에 구경각이 자리한다. 즉 구경각에 이르기 전에는 해오적인 깨달음이 선행한다. 그것은 심리 치료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신에 대해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참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는 통찰과 동일하다.
자비와 지혜, 지혜와 자비는 불교 수행자뿐만 아니라 심리 치료에 임하는 치료자나 환자가 모두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불교의 집중 명상을 통해 계발되고 증진하는 자비의 품성은 심리 치료에서 적극 도입할 부분이다. 통찰 명상도 좋은 감정이나 싫은 감정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조함으로써 심리 치유적 효과를 증진하고 이성적인 통찰을 촉발한다. 불교의 수행은 욕망의 속박과 존재의 결박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정신 치료를 뛰어넘고 있으나, 자신이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무의식적) 부분을 통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정신 치료가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공동 목표를 지향하는 명상과 심리 치료는 서로 보완해야 될 부분이 많고,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최훈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수련한 후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다. 한별정신병원 병원장, 한별심리분석연구소장, 한국 명상-영성치료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초빙교수, 휴앤심 명상상담연구소장으로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불교를 접한 뒤 선과 정신 치료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명상을 즐긴다. 주요 저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정신의학 이야기』, 『무아사상의 심리 치료적 의미』,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 연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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