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다행인 만남
박성구
전 『SBS Biz』 국장, 대원아카데미 졸업생
내 마음 들여다보는 공부를 시작하며
도대체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내 마음 같겠거니…’ 하다가는 당황스러운 일이 생긴다. 크게 속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남한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제 생각대로 남을 보다가 큰코다친 일을 겪다 보면 사람이 정말 다르구나 싶고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내가 제대로 아는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일을 저질러놓고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를 때가 있다. 뭔가에 씌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 마음조차 자신이 제대로 모르거니와 안다 해도 엉뚱하게 처신한다. 제 마음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실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게 맞다.
우선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자는 생각에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저녁 시간을 활용해 정토회에서 1년간 공부했다. 부처님의 생애와 기본 교리를 공부하며 불교야말로 심리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욕심을 내서 대원아카데미(구, 대원불교문화대학)에서 불교심리상담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불교와 심리학을 접목한 교육 과정을 공부하며 명상 수행도 간간이 하다 보니 왜 이런 공부를 일찌감치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학 때 이른바 운동권 서클에서 사회과학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유물변증법적 사고만큼 사회와 역사를 보는 혜안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나에게 불교와의 만남은 후반기 내 삶을 흔들어 방향을 잡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성당에 나갈 때면 신경 써서 옷차림을 깨끗이 했다. 하늘색 스타킹에 레이스 달린 흰색 양말을 신었다. 성스러운 분위기에 끌렸다. 거기서 우연히 담임 선생님을 만나 교리반에 들어가는 통에 그만뒀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은 본당의 분위기와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수줍음이 많던 내게 낯선 아이들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손에 끌려 교회에 처음 나갔다. 참 열심히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입시 핑계로 시들해졌다. 대학에 들어와 다양한 학문의 세례를 받으며 알량한 신앙심은 날아갔다.
불교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학
그럼에도 절대자에 기대고픈 인간의 유약함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기어코 내가 좋아한 ‘성스러운’ 분위기를 찾아 성당을 다녔다. 술과 담배에 제동을 걸지 않는 것도 성당을 선택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신앙은 과학과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스스로 치부했다. 그러기에 내면에 늘 갈등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불교와 만난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 갈등이 해소되었다. 절대자에 막연히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철학적 바탕이 고전 물리학이나 서구 형이상학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과학적 성취나 이성적 사유에 위배되지 않는 최고의 가르침(宗敎)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불교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학 그 자체였다. ‘왜 이렇게 돌고 돌아 뒤늦게 불교를 만났을까, 그것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하는 생각. 하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토대가 된다. 그래서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환갑을 맞고서야 대학원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대원아카데미와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뒤늦게 네 학기를 마쳤다. 덕분에 얼마 전 불교심리상담사 2급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정토회로 시작한 불교와의 만남이 본격적인 상담심리학 공부로 연결되는 단계에 대원아카데미는 중간 거점이 된 셈이다. 불교와 상담심리학을 이으면서 자기 구원과 남을 돌보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보살행의 기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참 고맙고 고맙다.
박성구
서울대학교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연합뉴스』 기자를 시작으로 『YTN』 기자, 『SBS』 기자 및 부장, 『SBS Biz』 국장, 이사로 활동하다가 2022년 퇴직했다. 2023년 2월 대원아카데미와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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