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심원사 창건설화, 황금멧돼지와 사냥꾼 | 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철원 심원사


황금 멧돼지와 사냥꾼


그림 | 한생곤

철원 심원사에 모셔진 명부전의 지장보살상에는 황금 멧돼지로 화해 사냥꾼 형제를 살생에서 벗어나 출가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철원 심원사의 ‘황금 멧돼지와 사냥꾼’이라는 창건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른 지장 도량과 달리 심원사는 ‘생지장 상주’ 영험 도량으로 알려져 있어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심원사는 경기도 연천 보개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원심원사에 봉안했던 지장보살상은 현재 철원 동송읍의 심원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다. 여기에는 황금 멧돼지로 화해 사냥꾼 형제를 살생의 죄업에서 벗어나 출가하게 한 설화가 있다.

보개산 기슭에 큰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배가 가지가 휘도록 열린 어느 여름날, 까마귀 한 마리가 이 배나무에 앉아 짝을 찾는 듯 ‘까악, 까악!’ 울어댔다. 배나무 아래에는 포식을 한 독사 한 마리가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까마귀가 다른 나무로 날아가는 바람에 배 한 개가 독사의 머리에 툭! 떨어졌다.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뱀은 화가 났다. 독기가 오른 뱀은 온 힘을 다해 까마귀를 향해 독을 뿜어냈다. ‘내가 일부러 배를 떨군 것이 아닌데 저놈의 뱀이 독기를 뿜어대는구나.’ 독기가 까마귀 몸속에 퍼졌다. 까마귀는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뱀 또한 너무 세게 얻어맞은 데다 독을 다 뿜어 죽고 말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듯이, 까마귀와 뱀은 죽고 말았다. 까마귀와 뱀은 죽어서까지도 원한이 풀리질 않았다. 뱀은 죽어서 멧돼지로, 까마귀는 암꿩으로 환생했다.

멧돼지는 먹이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알을 품고 있던 암꿩의 모습이 멧돼지 눈에 들어왔다. “음! 전생에 나를 죽게 한 원수 놈이로구나. 저놈을 당장 죽여야지.” 멧돼지는 전생의 일을 기억하며 살며시 산비탈로 올라가 발밑에 있는 큰 돌을 힘껏 굴렸다. 암꿩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까마귀를 죽인 멧돼지는 속이 후련했다. 이때 사냥꾼이 그곳을 지나다 죽은 꿩을 발견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꿩을 주운 사냥꾼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한걸음에 오두막집으로 내려갔다.

“여보, 오늘 내가 횡재를 했소.” “어머나, 이거 암꿩이잖아요. 어떻게 잡으셨어요?”

“아 글쎄, 골짜기 바위 밑을 지나다 보니 이놈이 알을 품고 있지 않겠소. 그래서 돌을 집어 살금살금 다가가서 내리쳤소, 하하!” 내외는 그날 저녁 꿩을 요리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생겼다. 결혼 후 태기가 없던 사냥꾼 아내에게 태기가 있게 되고, 그로부터 열 달 후 옥동자를 낳았다. 두 내외는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다. 이윽고 아들은 씩씩한 소년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활쏘기를 익혔다. 사냥꾼은 아들이 훌륭한 사냥꾼이 되길 바랐다.

“자 이번엔 네가 쏴봐라.” “뭔데요, 아버지?”

“저기 저 소나무 아래 꿩 말이야.” “꿩요? 난 꿩은 안 쏠래요.”

“아니 왜?” “왠지 저도 모르겠어요. 전 멧돼지만 잡고 싶어요.”

“거참 이상하구나. 넌 왜 멧돼지 말만 하면 마치 원수처럼 여기는지 모르겠구나.”

“괜히 그래요. 멧돼지는 전부 죽이고 싶으니까요.” 사냥꾼은 아들의 기개가 신통하다고 여기면서도 넌지시 일렀다. “넌 아직 멧돼지 잡기엔 어리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냥꾼 부자는 온종일 산을 헤맸으나 한 마리도 못 잡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갑자기 외쳤다. “아버지! 저기 멧돼지가 달려가요.” “어디?” 사냥꾼은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아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순간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멧돼지 머리에 정통으로 꽂혔다. 멧돼지가 죽은 것을 확인한 아들은 기뻐 날뛰며 소리쳤다. 아버지는 “음, 저 녀석이 왜 멧돼지만 보면 정신없이 구는지를 모르겠군”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아들의 거동을 유심히 살폈다. 아들은 장성할수록 더욱 멧돼지를 증오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사냥꾼은 사냥 도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고, 중년에 이른 아들은 아버지 뒤를 이어 사냥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개산으로 사냥을 나간 아들은 그날따라 이상한 멧돼지를 발견했다. 그 멧돼지는 우람한 몸집에 온몸에서 황금빛이 나고 있었다. “참 이상한 놈이구나. 저놈을 단번에 잡아야지.” 그는 힘껏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적중했다. 그러나 황금 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도 환희봉[별칭: 지장봉]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닌가. 그는 멧돼지가 숨어 있는 곳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황금 돼지는 간 곳이 없고, 돼지가 숨어 있을 만한 자리에는 현재 철원 심원사에 모셔진 지장보살 석상이 있었다. 석상은 우물 가운데서 상반신만 나와 있고 하반신은 물속에 감춰져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저기 지장보살님이 우물에 빠져 있어. 그런데 왜 왼쪽 어깨에 화살이 박혀 있지? 아이쿠 큰일 났네. 내가 지장보살님을 쏘았어.” 이 석불이 멧돼지로 화현한 것일까. 그는 기이한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까마귀와 뱀의 인과(因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처님께서 멧돼지로 화현해 화살을 맞은 까닭을 알 리가 없었다. 왼쪽 어깨 중앙에 쏜 화살이 꽂혀 있어 화살을 뽑으려 하나 화살은 뽑히지 않았고, 또한 물속에 잠긴 작은 석상을 꺼내려 안간힘을 썼으나 무거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황금 멧돼지로 나투신 지장보살이라고 전해지는 심원사 명부전에 모셔진 ‘생지장보살상’에는 왼쪽 어깨에 두 개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 치(3cm)가량의 금이 뚜렷이 있는데 그것은 사냥꾼 부자가 쏜 화살이 박혔던 자리이며, 몸이 약간 불그스레한 것은 그때 흘리던 피가 몸에 묻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전한다.

다음 날 날이 밝자 그 자리를 다시 찾은 그는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제 분명히 머리만 밖으로 나와 있던 석불이 어느새 우물 밖으로 나와 옆 돌 반석 위에 조용히 앉아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는 석불 앞에 합장을 했다.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이시여! 저희 중생들의 우매함을 용서해주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들은 내일 다시 와서 당신을 뵈올 테니 부디 우물가에 계셔주세요. 그러면 저희들은 부처님께 귀의해 출가의 길을 걷겠나이다.” 그 길로 그 사냥꾼은 머리를 깎고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300여 무리를 동원해 절을 짓고 석불을 모셨다. 이 사찰이 ‘석대암’이다.


현재 심원사의 명부전에 모셔진 ‘생지장보살상’은 그때 황금 멧돼지로 나투신 지장보살이며, 석 자(1m)쯤의 키에 왼손에는 구슬[明珠]을 들고 있고, 왼쪽 어깨에 두 개의 흔적이 있다. 여기에는 한 치(3cm)가량의 금이 뚜렷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그때 사냥꾼 부자가 쏜 화살이 박혔던 자리이며, 몸이 약간 불그스레한 것은 그때 흘리던 피가 몸에 묻어서 그리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이 이야기는 철원 심원사의 ‘황금 멧돼지와 사냥꾼’이라는 창건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른 지장 도량과는 달리 심원사는 ‘생지장 상주’ 영험 도량으로 알려져 있어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원기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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