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일주문 인근에 핀 꽃무릇 |
선운사 꽃무릇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곳은 지나던 스님은
“이제 꽃이 질 때가 된 것 같어”라고
말풍선을 터트렸지만
꽃무릇을 찍는 사진작가들은
흐드러진 꽃의 향연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아름답지요.”
이미 진 꽃과 피어 있는 꽃들을 찍던
사진작가의 철학 섞인
말 한마디가 법거량처럼 들린다.
고창 선운사에 피는 꽃을 생각하면 으레 동백꽃을 연상한다.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선운사의 동백꽃은 당대의 걸출한 시인의 시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선운사 뒤편의 거대한 동백 숲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설운 선운산’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동백꽃과 더불어 최근에는 ‘선운사 꽃무릇’이 명성이 더 높다. 9월 중순부터 일주문에서부터 선운산 곳곳에 봇물처럼 피어오르는 꽃무릇의 향연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사진작가들이 생산해 내는 명작품과 인터넷 SNS에 올라오는 꽃무릇의 향연은 뭇사람들을 선운사로 발길을 재촉하게 한다.
처연한 슬픔 잉태한 ‘이별 꽃’
선운사 꽃무릇 사진전시회를 가진 전재우 작가의 작품집을 본 뒤 꽃무릇 병이 생겼다. 꼭 한번 선운사 꽃무릇을 보러 가야지하는 작심을 한 지 몇 년이 지나도 그 원을 이루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간 선운사행은 연례행사가 됐다.
올해 꽃무릇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는 선운사 스님의 귀띔이 시간을 만들어 냈다. 꽃무릇은 장관을 이루며 피어나는 아름다움 뒤에 처연한 슬픔을 잉태하고 있다. 동백꽃이 슬픔을 상징하듯 꽃무릇도 한껏 슬픔을 품고 있다. 9월 말 단풍이 오기 전에 피는 꽃무릇은 붉은 단풍이 지는 슬픔에 앞서 ‘슬픔 연습’을 하라는 듯 선운사의 또 다른 슬픔을 잉태하며 지천에 피어난다.
꽃잎 사이로 수술이 길게 나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이 붉은 빛 갈고리 같은 꽃무릇. ‘지옥의 꽃’ 또는 ‘죽은 이의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꽃과 잎이 따로 피는 독특한 생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일반 사람들은 상사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9∼10월 경 꽃이 완전히 지고난 뒤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잎이 자라났다가 5월 경 완전히 말라버린다. 더운 여름 동안은 자취도 없이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 매끈한 꽃대가 쑥 올라와 붉은 꽃을 피운다.
이러한 생태가 상식적인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다. 그래서 ‘피안화(彼岸花)’라 불리기도 한다. 꽃이 피는 습성이 독신으로 생을 마치는 수도자와 같다고 하여 ‘중꽃’ 혹은 ‘중무릇’으로도 불렀다.
‘이루지 못하는 슬픈 사랑’의 전설
비슷한 식물로 상사화(相思花)가 있다. 꽃무릇과는 색깔과 생김새가 다를 뿐 생태와 습성도 비슷하다. 하자만 상사화는 꽃무릇과 같이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데서 연유된 데서 ‘이루지 못하는 슬픈 사랑’의 의미를 담은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옛날 중국에 약초 캐는 사람이 조선 땅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반도 곳곳을 헤매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 그는 딸에게 후대에라도 불로초를 구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젊은 아가씨는 불로초를 찾아 나서게 되고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산사에 이른다. 그곳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젊은 스님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 후 아가씨는 스님을 보기 위해 매일 절을 찾아 먼발치에서라도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다. 어느 날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스님에게 사랑을 고백을 했다. 하지만 수행에 전념하던 스님은 부처님 제자로서 여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고 깊은 토굴로 들어가 버린다. 이 충격으로 여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세월이 흘러 스님도 세상에 나와 그 여인의 사연을 듣고 난 뒤 깊은 죄책감을 느끼다가 급기야 병을 얻어 죽고 만다.
몇 년 후 스님이 입적한 토굴 앞마당에서는 매년 봄마다 수행자의 기상처럼 푸른 잎이 올라왔다가는 시들어 버린다. 이어 가을이 되면 곱디 고운 아가씨의 예쁘고 수줍은 모습처럼 붉은 꽃이 올라와 피는데 푸른 잎과 붉은 꽃은 언제나 만나지 못했다.
푸른 잎은 붉은 꽃을 보지 못하고 붉은 꽃은 푸른 잎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전설에 나오는 젊은 수행자와 아리따운 아가씨 사이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의 비극을 보는 듯하다. 선운사 계곡 계곳 지천에 피어있는 꽃무릇 길을 걸으며 호흡명상을 해 본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들어오는구나!’ 숨을 내쉬면서 ‘나가는구나!’ 잠시 숨을 멈추면서 ‘알아차림!’ ‘꽃이 눈에 들어온다!’ ‘꽃이 눈에서 멀어진다!’ ‘잠시 멈춤!’
퇴직을 1년 여 앞둔 직장생활에도 변화가 왔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하며 부처님오신날 이후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숲명상을 지도하고, 문학치유사로 활동하는 33년 차 기자에게 다가온 낯선 손님이다. 4개월 여 괴롭히는 번뇌를 붉은 꽃무릇이 지는 물결에 묻어 버리려 애를 써 본다.
그러면서 불교 경전에 있는 ‘두 번째 화살의 비유’를 떠올려 본다. 첫 번째 화살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병이 생기는 것, 늙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원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이런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나서 스스로는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내 상황이 그런 것 같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괜히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선운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계곡 건너편 차밭에 접어들면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자고 다짐을 하며 호흡명상을 해 본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멈추는 곳에 마음을 집중해 본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 스스로가 온갖 풍파를 일으키고 있구나!’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객관하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나와 거리를 두고 걷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도 객관화되고 조금씩 평온을 찾아간다. 선운사 대웅전 마당에 다다른다. 본래 나로 돌아온 듯하다.
사찰에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
선운사와 같이 꽃무릇이 절에 많이 심어져 자라는 실용적 이유도 있다고 한다. 물론 꽃무릇이 자라는 식생이 맞아야 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돌보는 이들의 정성에 따라서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꽃무릇은 뿌리에서 즙을 내어 물감에 풀어 탱화 또는 단청의 안료로 사용됐기 때문에 절에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안료는 자연방부제 역할을 해서 좀이 슬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는단다.
꽃무릇은 자원식물(資源植物)로도 이용됐다. 5월경 잎이 지고 난 뒤 알뿌리를 캐내어 갈아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서로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 필요한 강력본드로 이용했다고 한다. 꽃무릇 풀로 붙인 한지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인쇄문화는 불경출판이 그 효시였으니, 불경을 인쇄·제책하던 절에서 꽃무릇을 많이 심었을법 하다. 지금도 꽃무릇이 많이 핀 땅은 옛 절터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월 말 선운계곡 절정 이뤄
선운사 꽃무릇을 보려면 매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9월 말 즈음 찾아가면 된다. 선운사 입구부터 선운산 전역에 붉게 핀다. 특히 일주문을 지나 양측 정원에는 꽃무릇만 지천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이어 선운계곡 곳곳에 꽃무릇이 피어난다. 꽃무릇은 짧은 시간에 피어난 뒤 지기 때문에 절정의 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일주일 정도다.
선운사 꽃무릇은 선운산을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위쪽에 위치한 지장도량 도솔암에도 지천을 이루고 참당암 등 인근 암자에도 꽃무릇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2시간 여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꽃무릇을 감상하려면 선운사 입구에서부터 선운사를 거쳐 도솔암과 참당암을 들르는 코스를 선택하면 좋다. 그 외 짧은 시간에 꽃무릇을 감상하려면 선운사 일주문 옆 정원을 충분히 감상한 뒤 선운사 대웅전 뒤편과 대웅전 우측 요사채 언덕 등에 핀 꽃을 보고 나오는 코스를 택하면 된다.
선운사 꽃무릇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미 곳곳에는 꽃이 져 꽃대가 스러져 있었지만 입구 너른 정원과 대웅전 우측 요사채 옆과 대웅전 뒤편 동백숲에서는 싱싱한 붉은 꽃대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나던 스님은 “이제 꽃이 질 때가 된 것 같어”라고 말풍선을 터트렸지만 꽃무릇을 찍는 사진작가들은 흐드러진 꽃의 향연을 렌즈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아름답지요.” 이미 진 꽃과 피어 있는 꽃들을 찍던 사진작가의 철학 섞인 말 한마디가 법거량처럼 들린다. 피어남이 있으면 지는 것도 당연한 인연법임을 사진작가도 깨달은 것일까. 선운사를 나오는 내내 지은 꽃무릇이 내년에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꽃잎이 진다고 꽃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글귀가 떠오른다.
| 선운사 본당 뒤 꽃무릇밭 |
글/사진__여태동 시인. 경북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및 동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동방문화대학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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