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에 관한 최신 과학, 그리고 2,500년 앞서간 부처님의 혜안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가을'이라는 물건이 어딘가에 실재하다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서늘해지고, 잎이 물드는 수많은 변화가 함께 일어날 때, 우리 마음이 그 모두를 '가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뿐이다. 가을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뇌가 세상을 유용하게 잘라내어, "이제 곧 추워지겠구나, 옷을 꺼내자"처럼 예측과 행동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지어낸 도구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우리가 그토록 확실하다고 믿는 이 '자아'는, 혹시 가을과 같은 것은 아닐까. 지난 20여 년의 뇌과학은 놀랍게도 바로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도착지에는, 이미 2,500년 전에 같은 이야기를 해 둔 분이 계셨다.
뇌는 '예측하는 기계'다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뇌는 두개골이라는 캄캄한 방에 갇혀, 바깥세상을 단 한 번도 직접 만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뇌가 가진 것은 눈·귀·피부에서 들어오는 전기신호 뿐이고, 뇌는 그 신호를 근거로 바깥이 어떤 모습일지 끊임없이 추측한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Anil Seth)는 이를 두고 "우리가 보는 세계는 뇌가 만들어낸 잘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표현한다. 지각이란 바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뇌의 예측과 실제 신호를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뇌는 어두운 방안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기존의 것들과 비교 분석하고 새로운 행동을 지시 내린다. 이후 지시내린 행동이 시행되었을 때 들어오는 정보들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다시 분석한다.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것은 최대한 시행착오와 계산을 통해 예측 가능한 쪽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뇌의 기능이다. 다만 이러한 작용이 너무 빠르고 또 대부분 예측되는 내용이라 우리는 이것을 의식하면 생활하지는 않는다. |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은, '나'라는 느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뇌는 심장 박동, 호흡, 배고픔, 내장의 상태 같은 몸속 신호(내수용감각)까지도 매 순간 예측하며, 그 예측을 바탕으로 "이 몸이 곧 나"라는 감각을 지어낸다. 세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세상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자아'를 예측한다. 자아란 뇌가 자기 몸을 건사하려고 끊임없이 내놓는 일종의 일기예보인 셈이다.
내 손조차 1분이면 속는다
이것이 단지 그럴듯한 이론에 불과할까? 스위스의 뇌과학자 올라프 블랑케(Olaf Blanke)의 실험실에서 보여준 것은 이론이 아니라 눈앞의 사실이다. 참가자의 진짜 손을 가린 뒤 그 옆에 고무손을 놓고, 두 손을 붓으로 동시에 쓰다듬는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 고무손을 '내 손'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심지어 고무손을 망치로 내리치려 하면 깜짝 놀라 진짜 손을 움츠린다. 나아가 블랑케 연구팀은 가상현실 장치를 이용해 "내가 내 몸 밖에 있는 것 같은" 유체이탈 비슷한 경험까지 실험실에서 유도해 냈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내가 이 몸을 '내 것'이라 느끼는 그 기본적인 감각조차, 뇌가 여러 감각을 짜맞춰 만들어낸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속는 것이 자아의 가장 밑바닥이라면, 그 위에 쌓인 '나'라는 느낌은 과연 얼마나 단단한 실체일까.
'나' 라디오 채널, 그리고 명상
우리 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오히려 활발해지는 회로가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 불리는 이 회로는, 마치 자동으로 켜지는 라디오 채널처럼 온종일 "내 걱정, 내 과거, 내 계획, 내 이야기"를 틀어댄다. 자아를 끊임없이 되뇌는 방송국인 셈이다.
| 우리의 생각의 틀은 체계적이고 복잡하게 정해져 있다. 반복되는 예측 오차로 수정이 필요할 때 우리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재구성 해야한다. 기후온난화가 보편화 될 때 그 영향이 농사가 직업인 사람에게만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영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다양한 영역에서 예측이 변경 수정되는 과정 그리고 그 중에서 의미있는 것을 추려 효율화 하는 과정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추정하고 있다. |
흥미롭게도, 수십 년간 수행한 숙련 명상가들의 뇌를 촬영하면 명상 중에 바로 이 회로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Brewer 외, 2011).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오랜 수행이, 뇌에 실제로 흔적을 남긴 것이다. 무아를 향한 수행이 그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사실은, 명상 전통이 오래전부터 말해온 바를 과학이 뒤늦게 확인한 장면이라 할 만하다.
자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디에도 없는 허깨비일까. 그렇지는 않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자아가 몸의 상태를 살피는 밑바탕에서부터 순간의 '나', 그리고 기억과 이야기로 짜인 '나'까지 여러 층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주장하였다. 자아는 분명히 작동하지만, 고정된 물건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촛불을 떠올리면 쉽다. 촛불은 하나의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타면서 매 순간 새로 생겨나는 과정이다. 강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안에 같은 물은 한 번도 흐른 적이 없다. 철학자 에반 톰슨(Evan Thompson)의 표현대로, 자아는 명사(a self)가 아니라 동사(self-ing), 곧 '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다.
2,500년 전, 부처님의 수레
여기까지가 최신 뇌과학이 도달한 결론이다. 그런데 이 결론은 전혀 새롭지 않다. 『밀린다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왕에게 수레를 두고 묻는다. 바퀴가 수레인가, 굴대가 수레인가, 차체가 수레인가. 그 어느 하나도 수레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모여 인연을 이루면 우리는 '수레'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색·수·상·행·식의 다섯 무더기(오온)가 모여 '나'라 불릴 뿐, 그 안에 변치 않는 '나'라는 실체는 없다 — 이것이 무아(無我)다.
부처님의 수레와 우리의 가을, 그리고 뇌가 만들어내는 자아는 정확히 같은 구조다. 여러 요소가 모여 만든 유용한 이름일 뿐, 그 이름에 해당하는 고정된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한 2,500년 전의 통찰과 21세기 실험실의 발견이 같은 봉우리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AI조차 같은 길을 걷는다
AI는 인간의 뇌신경망을 모방하여 만들었고 인간과 닮게 생각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요즘의 AI는 '가을'이 무엇인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수많은 사례를 스스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가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예측을 더 잘하기 위해 세상을 유용한 개념들로 잘라내는 것이다. 자아 역시 그러할지 모른다. 뇌가 이 복잡한 몸과 삶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쓸모 있는 압축 파일, 그것이 '나'라는 개념일 수 있다. 가을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여기서 한 바퀴를 돌아 완결된다.
다만, 정직하게
물론 과학이 종교를 '증명'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에반 톰슨 같은 학자는 "뇌과학이 무아를 증명했다"는 성급한 주장이 과학과 불교 양쪽을 모두 오독하는 것이라고 신중히 경고한다. 명상가의 뇌영상 연구는 아직 표본이 작고, 해석에도 조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이 점은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만은 또렷하다. 안으로 마음을 관찰해 들어간 2,500년의 수행 전통과, 밖에서 뇌를 측정해 온 현대 과학이, 서로 약속한 적도 없이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자아가 붙잡아야 할 실체가 아니라 흘러가는 과정이자 하나의 개념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나'라는 집착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가을이 왔다가 소리 없이 지나가듯, '나'라는 느낌 또한 매 순간 새로 피어났다 흘러가는 과정임을 — 부처님은 이미 아셨고, 과학은 이제야 그 자리에 다가서고 있다.
참고: Anil Seth, 『내가 된다는 것(Being You)』(2021) · Thomas Metzinger, 『에고 터널(The Ego Tunnel)』(2009) · Olaf Blanke & Metzinger, 신체 소유감 착각 연구(2009) · Brewer 외, 명상과 디폴트모드망 연구(PNAS, 2011) · Antonio Damasio, 『자아가 마음이 될 때(Self Comes to Mind)』(2010) · Evan Thompson, 『Why I Am Not a Buddhist』(2020) · 『밀린다왕문경』 수레 비유
이병철|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강성심병원 기획실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신건가의학과 대표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위원장, 대한명상의학회 대외협력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임상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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