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삶에 목적이 있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일까? 그런 삶의 목적, 삶의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못 찾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삶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당신 삶의 방향성은 전혀 정해져 있지 않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유정법(無有定法), 정해진 것은 있지 않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거나, 또 어디로 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늘 있을 뿐이다. 늘 매 순간 당신 삶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되고 있다. 지금 이것이 그것이니까.
내 삶의 목적을 찾느라 방황할 필요는 없다. 어디로 가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애쓸 것도 없다. 지금 그 모든 추구와 답을 찾던 마음을 멈춰 세운 뒤에, 바로 지금 여기에 본래부터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저 확인하기만 하면 될 뿐.
나를 내 삶의 주체자라고 여기지 말라. 그렇게 이 몸을 나와 동일시하면 이 몸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만 할 것 같고, 이 몸의 삶의 목적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망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 오고 갈 '나'는 없다. 그래서 부처님의 명호 중에 하나는 여래여거(如來如去), 즉 여여하게 오고 가시는 분, 즉 오거나 감이 없는 분임을 뜻한다.
당신은 어디에서 온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갈 곳도 없다. 아니, 그럴 만한 '당신', '나'가 없다. 이러한 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조금씩 깨달음의 길로 다가서고 있다.
나의 분별과 망상과 자아관념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내가 삶을 산다', '내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성을 상실하게 되며, 그렇듯 자아가 붕괴되는 고통 너머에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내가 없다는 직접적인 체험
여기에 '나'가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지만, 사실 그것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이 아닐까? 내가 없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다. 직접적인 체험으로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는 체험으로 보면 '내가 듣는다', '내가 본다', '내가 생각한다', '내가 느낀다', '내 몸이 있다', '내 의지가 있다', '내 의식이 있다'가 더 진실한 것이 아니라, 그저 '들리는 경험이 저절로 일어나고', '보는 경험이 일어나고', '생각이라는 무언가가 저절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몸의 감각이라는 경험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인 것은 아닐까?
어떤가! 섯부르게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으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 모든 경험들을, 생각의 개입 없이 직접적으로 바라보라.
'내가 생각한다'가 더 진실한가? 아니면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가 더 진실한가? 전자에는 '생각하는 나'가 있다는 뜻이고, 후자에는 '나'가 없다. 일어나는 생각을 보고, 들리는 소리라는 경험을 보고, 보이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각하고 듣고 본다'고 결론 내려 온 것은 아닌가? 실제 경험은 '그것들이 저절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 경험되지 않는가?
냉정하게, 과거의 기억과 생각에 기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분별 없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경험들을 텅 빈 마음으로 그저 지켜보라. 거기에 정말 '나'가 있을까? 이름, 개념, 판단, 모양, 명칭을 붙이지 말고 그냥 바라보면 그저 '모를 뿐'이다. 이름, 개념, 판단, 모양 등은 전부 내가 대상에 대해 덧칠한 생각들, 이야기들, 상들일 뿐이지 않은가? 그것을 빼고 바라보면 무엇이 있을까? 아는 것은 없다. 모를 뿐이지만,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자각되어질 뿐.
텅 빈 가운데 저절로 보임, 들림 등의 경험이 지나간다. 공적영지, 공적하여 텅 빈 가운데 소소영령하게 아는 놈, 알아차리는 무엇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안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니까. 모를 뿐으로 지켜보라.
그것이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생각이 없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 몸이나 생각, 느낌, 감정, 의지, 의식이 '나'라고 여기는 것은 의식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 몸이 나라는 생각이 없다면, 나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 없이도, 삶은 살아지고, 모든 것이 경험되며, 소리는 들리고, 눈 앞에는 다양한 것들이 저절로 보인다. 그런 생각이 없어도, 나의 노력이 없어도 삶은 저절로 살아진다. 나이는 먹어가고, 숨은 저절로 쉬어지고, 배는 저절로 고파오고, 배가 고프면 저절로 먹을 것을 찾아서 입 안에 넣는다. 소화도 저절로 일어나고, 잠도 저절로 자 지고, 깰 때도 저절로 깨어난다.
이 모든 것에 습관적으로 '내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붙였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을 뿐이다.
사실 여기에는 개체적인 자아가 없다. 나는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다. 참된 우리의 본질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이다.
잠이 들어 꿈을 꿀 때, 순간에 꿈 속의 세계가 전부 창조가 되지만, 우리는 그 꿈을 진짜라 여기며, 그 꿈 속에서 '나'와 '남'을 나누는 허망한 의식을 지어낸다. 그러나 사실 그 꿈 속의 '나'가 진짜 나인 것이 아니라, 그 꿈의 세계 전체가 진정한 나이지 않은가?
참된 나는 육체 속에 갇히지 않는다.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것을 눈앞에서 확인해 보아야지만, 모든 문제는 끝난다. 모든 의문은 해결된다. 생사의 윤회는 그친다.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
당신은 무엇인가? 스스로 답해 보고, 스스로 맛을 보라.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마음공부의 여정이다.
법상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탁소리 지도법사로서 서울 목탁소리휴 주지,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다.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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