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중도(不二中道)의 현실적 의의와 적용]
중도와 팔정도, 괴로움을 끝내는 부처님의 길
중도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난 뒤 최초의 제자인 5비구에게 한 첫 번째 법문이 중도에 대한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전법륜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를 완전하게 때달았나니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중도는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팔지성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괴로움을 없애는 데 초점이 가있다. 본질적으로 볼 때 모든 괴로움은 존재하여 몸과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있다. 괴로움을 없애는 확실한 길은 몸과 마음에서 오는 괴로움을 해결하고 죽은 후 다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끝내는 것이다. 8정도가 어떻게 괴로움을 철저히 없애는지를 보겠다. 괴로움이 없어지면 이 글의 주제인 심리적 문제는 해결되고 정신건강은 자연히 따라온다. 심리적 문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을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게 해결하다보면 생긴다. 괴로움이 없으면 심리적 문제는 생길 수 없다.
불교정신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볼 때 팔정도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팔정도는 괴로움과 괴로움으로 인한 심리적 문제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괴로움을 없애는 물샐 틈 없는 시스템이다. 괴로움이 생길 때는 그럴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팔정도는 괴로움이 있을 때 괴로움을 없애고 나아가 괴로움이 아예 생길 수 없게 한다.
정견과 정사유, 괴로움의 뿌리를 바로 보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로 돼 있다. 팔정도의 시작은 정견이다. 정견은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진리인 사성제로 보는 것이다. 사성제는 괴로움이 어떤 것이고 왜 생기고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진리이다. 정견은 정확하게 보는 지혜가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기고 괴로움이 따라 온다. 살아가면서 대상이나 세상사를 볼 때 어리석은 주의를 기울이면 다시 말해서 잘못 보면 해로운 마음이 생기고 그로인해 해로운 마음부수가 우리 속에 생긴다. 그러면 괴로움이 생긴다. 잘못 봐서 생기는 괴로움을 바르게 보는 정견으로 괴로움을 없앤다. 괴로움은 잘못 본 결과다. 바로 봄으로써 괴로움이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정견의 내용은 경전에 있는 대로 사성제로 보는 것부터 뭐든지 있는 그대로 보는 것까지 다양할 수 있다. 모르면 모른다고 아는 것도 바로 보는 것이다. 다 알아야 정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견 다음으로 바른 사유를 보겠다. 바른 사유는 출리에 대한 사유와 성냄과 해침이 없는 사유다. 정견을 통해 정확하게 보고 난 뒤에 욕심과 성냄을 없애는 것이 바른 사유라고 보면 된다. 욕심과 성냄이 괴로움을 불러온다. 욕심과 성냄을 없애야 괴로움이 없다. 욕심은 출리에 대한 사유를 통해 다스린다. 출리에 대한 사유는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냄을 어떻게 없애는지를 보겠다. 지혜와 욕심이 없으면 자연히 성냄이 없겠지만 성냄이 있는지 없는지를 더 체크해서 성냄이 없도록 한다. 성냄이 없으면 남을 해치지 않는다. 정사유 중 해침이 없어진다. 정견, 정사유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건 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정견, 정사유를 통해 괴로움이 없어진다.
정어·정업·정명과 정정진, 삶 속에서 괴로움을 막는 실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진 것을 팔정도의 요소가 되는 말, 행동, 생계를 통해 다시 점검한다. 정어, 정업, 정명을 통해서 점검한다. 정어는 거짓말, 이간질 시키는 말, 욕설, 실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말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고 그 결과 자신도 괴로워진다. 말만 조심하여도 말로 인한 많은 괴로움이 없어진다. 정업은 생명체를 죽이는 것, 훔치는 것, 성적으로 잘못 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다. 잘못된 행위를 하면 그 결과가 좋지 않고 때로는 엄청날 수 있다. 그것을 수습하느라 우리의 귀중한 삶을 살 수 없다. 정명은 생활 수단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생활 수단이 어떤 것이냐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활 수단에서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렇게 삶 속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점검한 후 정정진을 한다. 정정진은 해가 되는 생각이나 의도나 행동이 일어나면 없애고, 아직 없으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유익한 것이 있으면 더 많이 일어나게 하고, 없으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하지 않고 이익이 되는 것을 한다.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한다. 그것을 멈추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해야 한다. 정정진을 실천하면 손해가 되는 것은 하지 않고 도움이 되는 것을 할 수 있다.
정념과 정정, 정신건강으로 완성되는 팔정도의 길
이것을 충분히 다 하고 난 뒤에 정념 즉 바른 마음챙김을 한다. 우리의 몸, 느낌, 마음, 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냐를 정확하게 보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안다. 마음챙김은 현재 무엇을 대하고 무엇을 하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때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맞게 함으로써 지혜도 생기고 좋은 경험도 쌓이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의 영향을 받으면 실제에 맞지 않게 되어 괴로움이 생기고 그것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게 하면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고 정신불건강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정정 즉 바른 삼매인 사선정을 닦는 것이다. 선정은 마음이 명상 대상에 확고히 집중된 상태로 번뇌가 없고 괴로움이 없고 지혜의 눈이 생기게 하여 몸과 마음을 궁극적 실재의 측면에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선정을 닦기 위해서는 마음이 명상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갔을 때 놓고 명상 대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선정을 닦는 것은 놓는 훈련을 완벽히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 놓는 훈련이 잘 되면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에 마음이 가면 쉽게 놓을 수 있다. 선정을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 놓는 훈련을 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괴로움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팔정도에 대해 요약해서 말하면 정견은 무엇이든 정확하게 보는 지혜이고, 정사유는 정견의 바로 봄을 바탕으로 하여 욕심과 성냄을 떠나는 것이며, 정어·정업·정명은 삶 속에서 괴로움을 만들지 않는 언행과 생계의 방식이다. 그리고 정정진, 정념, 정정은 더 정확하게 우리 자신을 알고 우리를 지킴으로써 괴로움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도와 괴로움이 생길 수 없는 물샐 틈 없는 시스템을 우리 속에 만든다. 이렇게 팔정도를 닦으면 괴로움이 발을 붙일 수가 없고 괴로움으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고 정신건강이 확고해진다.
전현수|부산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에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었다. 한양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경정신과 2년차 때 불교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2003년에 미얀마에서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수행을 했다. 현재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저서로 『전현수 박사의 불교정신치료 강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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