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세대 간 계승은 인간의 전유물 아니다|과학으로 바라본 생명의 존엄성

지식의 세대 간 계승은
인간의 전유물 아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눈먼 거인 오리온이 자신의 시종 케달리온을 어깨 위에 얹고 다닌다. 케달리온은 거인의 눈 구실을 한다. (위키피디아)

흔히 인간이 오늘날 최첨단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다’는 것은 ‘앞 세대들과 동시대인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오랫동안 인간만의 특성으로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행동생물학자들의 연구에서, 전서구(Homing Pigeon: 먼 길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도록 훈련된 비둘기)들도 최소한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경로를 찾을 때만큼은 집단 지식 은행(Collective Knowledge Bank)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전서구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데 모여 정보를 주고받음으로써 문제 해결 능력이 점점 더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동물의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분야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결과가 나왔다”라고 영국 스털링대학교 크리스틴 콜드웰 박사(심리학)는 논평했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비둘기의 지능을 칭찬해왔다. 선행 연구에서, 비둘기는 상징적 의사소통(Symbolic Communication)에서부터 기초적인 산술 계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 비둘기들은 광범위한 단서를 이용해 귀가 경로를 찾는데, 여기에는 후각 정보, 시각 정보, 청각 정보, 자기(磁氣) 정보가 포함된다.

한 마리의 비둘기만 놓고 볼 때, 동일한 장소에서 여러 번 풀어놓은 비둘기들은 시간 경과에 따른 내비게이션 수정을 통해 좀 더 적절한 귀가 경로를 찾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둘기 떼는 개체보다 우월한 직행 항로를 찾아내는 경향이 있으므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비둘기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집단 지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동 세대 비둘기들 간의 수평적 지식 공유는 그만하면 됐다. 그러나 비둘기들이 선조들의 지식을 기반으로 해, 대대손손 귀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을 소위 누적된 문화 진화(Cumulative Cultural Evolution)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이것만큼은 명실상부한 인간의 전유물로 간주되어왔다”라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도라 바이로 박사(행동생물학)는 말했다.

세대를 넘어선 지식 공유가 비둘기들 간에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바이로 박사는 동료 사사키 타카오 박사(생물학)와 함께 전서구들에게 GPS 장비를 부착한 다음 세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하여 첫 번째 그룹에게는 홀로 귀가하게 하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늘 똑같은 파트너하고만 귀가하게 하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대여섯 번마다 한 번씩 파트너를(선입선출법으로) 교체해줬다.

두 사람은 유명한 ‘스파게티 타워 실험(Spaghetti Tower Test)’을 참고해 이번 실험을 설계했다. 스파게티 타워 실험의 경우, 한 사람에게 스파게티와 점토를 사용해 가능한 한 탑을 높이 쌓게 하고, 옆에서 한 사람에게 그 장면을 관찰하게 한다. 탑 쌓기가 끝나면 관찰자에게 탑을 쌓게 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그 장면을 관찰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열 번을 계속한 후,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열 세대의 관찰자들은 각각 바로 앞 세대와 비슷한 탑을 쌓지만, 그 높이는 조금씩 더 높아졌다. 이것이야말로 ‘거인의 어깨 위에 선다’는 기본적 아이디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둘기들은 탑을 쌓는 대신 집을 향해 날아가야 했는데, 이것은 비둘기의 본능적 행동이다. 세 그룹에 속한 비둘기들 공히 처음에 몇 번 비행한 후 귀가 경로가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행을 거듭할수록, 완벽한 경로에 계속 접근하는 비둘기들은 세 번째 그룹밖에 없었다. 스파게티 타워 실험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파트너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바람에 경력이 축적된 비둘기들 말이다.

세 번째 그룹에서 새로 들어온 파트너는 신세대로서, 경험 많은 파트너의 지식을 계승해 업그레이드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4월 18일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기고했다.

“이번 연구는 동물 그룹에도 집단 지능과 문화 누적(cumulative culture)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하버드대학교 앨버트 카오 박사(동물행동학)는 말했다. “비둘기는 최적 경로를 스스로 탐색하는 게 아니라, 직전 세대 비둘기에게서 배운 경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완벽한 경로에 도달한다. 이것은 문화 누적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모든 전문가들이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좋아한다. 그것은 매우 신중하고 아름답게 수행되었다. 그러나 ‘동물이 문화를 누적시킬 수 있는가?’ 또는 ‘누적된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독일 튀빙겐대학교 클라우디오 테니 박사(비교심리학)는 말했다. “나는 비둘기가 새로운 행동을 진정으로 학습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비둘기의 문화란 ‘누적된 문화의 아류’에 불과하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맥심 더렉 박사(진화인류학)도 테니 박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인간의 누적된 문화는 비둘기의 누적된 문화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대화와 문서를 뛰어넘어, 전자와 통신 수단까지 다양한 수단을 통해 문화를 누적시킨다. 이에 반해 비둘기는 고작 현장 실습을 통해 귀가 경로를 향상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이로와 사사키 박사도 비둘기와 인간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연구에서, 비인간 동물(Nonhuman Animal)도 세대를 뛰어넘어 지식을 누적시키고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누적된 문화 진화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종전의 생각과는 달리 ‘문화를 누적시키는 데는 정교한 인지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사사키 박사는 힘주어 말했다.

|참고| 스파게티 타워 실험이란?
인간의 문화 진화에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누적성’이다. 기술과 지식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더욱 향상되고 정교해진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문화 지식이 누적되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영국 스털링대학교의 크리스틴 콜드웰(Christine Caldwell)과 알리사 밀런(Alisa Millen)은 참가자들을 일렬로 배치한 다음, ‘앞사람은 뒷사람이 보는 앞에서 단순한 과제를 처리하고, 뒷사람은 앞사람이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라’고 지시했다. 각 참가자들에게는 앞사람을 지켜보는 시간 5분과 제작 시간 5분이 주어졌다. 참가자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두 가지, 즉 ‘요리되지 않은 스파게티를 찰흙처럼 사용해 높은 탑을 세우는 것’과, ‘가능한 한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종이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뒤로 갈수록 디자인의 완성도가 점점 더 높아져, 더 높은 탑과 더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집단 내부에 정보가 누적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콜드웰과 밀런은 문화의 누적에 관여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후속 실험을 실시했다. 첫 번째 그룹 사람들에게는 앞사람의 제작 과정을 그대로 모방하게 하고, 두 번째 그룹 사람들에게는 앞사람이 제작한 완성품만을 참고하게 하고, 세 번째 그룹의 뒷사람들에게는 앞사람들로부터 제작 방법을 직접 지도받게 했다. 실험 결과, 세 가지 메커니즘(모방, 완성품 참고, 직접 지도)이 누적적 문화 진화에 기여하는 정도는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 출처 : 『센스 앤 넌센스,』, 케빈 랠런드·길리언 브라운, pp. 290~291

○ 출처 :
Science(www.sciencemag.org/news/2017/04/think-only-humans-can-build-knowledge-previous-generations-meet-these-pigeons)


양병찬│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진로를 바꿔 중앙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지식리포터 및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자연의 발명』, 『매혹하는 식물의 뇌』, 『물고기는 알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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