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普光寺)의
향나무와 전나무
남효창
(사)숲연구소 이사장
경기도 고령산과 계명산은 양주와 파주를 대표하는 산이며, 보광사는 파주 고령산 허리쯤에 자리 잡고 있다. 보광사를 찾아가는 길에는 유난히도 조선시대와 근대를 빛낸 선인들의 능과 묏자리가 많이 보인다. 조선 왕조 시대의 3능에서부터 허균, 율곡 이이 등. 그리고 6.25전쟁 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사단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음미하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마장호수 흔들다리가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세운다. 길이가 220m라는 흔들다리와 수변에 마련해놓은 나무 덱을 따라 걸으며 자연이 주는 상쾌함을 느낀다. 아쉽게도 많은 방문객이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마장호수 주변의 역사와 문화, 자연에 대한 재미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흔들다리 주변의 나무들이 갑작스러운 개발로 인해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흔적도 눈에 들어온다. 항상 그렇듯이 대재앙은 반드시 아주 소소한 일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 무언가 근본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다시 보광사로 발길을 옮긴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불현듯 ‘인류로서 나는 어디쯤에서 어떻게 살고 있지?’란 궁금증이 발동한다.
현생인류는 대략 2만 세대째쯤이 되고, 단군 이래 우리는 167번째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인구는 1만 년 만에 1,000배가 증가했다. 1,800년 이후 약 200년 만에 세계 인구는 6배 증가했고, 기대 수명은 2배 상승했다. 6.25전쟁 이후인 1956년에 비해 평균 수명은 26년이 길어졌고, 연간 소득은 15배 상승했다.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과 알리바바에서 제공하는 구매 가능한 제품만 하더라도 무려 1억 가지가 넘는다. 실로 어마어마한 진화다. 인류와 더불어 인류가 필요로 하는 사물과 생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그 밖의 생명체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 이러한 성장 방정식이 진정 긍정적 미래를 염두하고 그려지는 그래프일까?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의 대명사인 인류는 지나치리만큼 세상 만물을 인류 중심에 놓고 해석하는 마치 그런 방식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가운데) 고통스럽게 서 있는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 건강하지 못한 경우 줄기에서 잎이 돋아나는 나무들이 많다. (오른쪽) 리기다소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송진을 만들어낸 흔적이 보인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 특히 나무란 생명체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할 때 바라보아야 할 대표적인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기에 다른 생명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이끌어낸다. 종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있다. 다양성의 붕괴 현상이 몰고 올 결과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멸종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종은 말없이 사라진다”라고 한 독일의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베버의 말이 떠오른다. 현생인류는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종을 강요하지만, 결코 복종의 대상도 아니며 복종되어지는 대상도 아니다.
보광사의 해탈문을 들어서니, 넓게 빛을 비춘다는 사찰의 이름이 말해주듯 왠지 따뜻하고 온화하며 점잖은 느낌이 든다. 병풍처럼 펼쳐진 전나무 숲이 한층 사찰을 윤기 나게 하고, 사찰 한쪽에 우뚝 서 있는 향나무가 무언가 깊은 사연을 간직한 듯하다.
나무로 산다는 것은 뿌리로 맛을 느끼고, 자전과 공전을 감지하고 마침내 일장(日長)의 길이를 섬세하게 측정하는 놀라운 은하계의 측량사가 되는 일이다. 얼마 후면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가 찾아온다. 나무들은 추분을 지나면서 이미 올해 자신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마치고 험난한 동지를 이겨내는 준비를 한다. 보광사 뒷편에 옹기종기 모여 자라는 전나무 숲은 대략 50~60년 전에 자라기 시작한 나무들로 친절하게도 걷고 쉴 수 있도록 전나무 숲길을 조성해놓았다. 물론 사람들이 심은(man-made) 숲이다. 아마도 사찰을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전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나무의 줄기가 반듯하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사찰의 기둥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나무다. 전나무의 본래 이름은 젓나무인데 자음동화(자음접변) 현상으로 인해 편의상 전나무로 부른다. 전나무는 추운 곳에 적응한 한대성 상록침엽교목으로, 우리나라 남한에서는 대략 해발 1,500m까지 자생할 수 있으며, 전나무의 어린 시절에는 소나무와 달리 응달에서 잘 자라는 기질이 있다. 성숙한 전나무는 높이가 40m 정도 자라며, 환경이 양호한 경우 500년까지 살 수 있는 자연 수명을 보이기도 한다. 전나무는 전형적인 향이 있는데, 전나무의 솔잎, 전나무 솔방울 그리고 어린 가지의 겨울눈에서 테르펜틴(terpentin, 소나무 송진의 일종)이라는 물질이 레몬 향과 비슷한 향을 낸다. 전나무와 아주 가까운 종으로는 분비나무와 구상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이다. 특히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나무로 특산수목이다. 이들은 솔방울(구과)의 크기와 모양, 침엽의 모양, 가지에 발달한 겨울눈의 모양 그리고 나무의 수피(껍질)로 구분할 수 있다.
전나무 숲 |
나무는 오롯이 빛의 율동에만 몰두하고 그의 뿌리는 물을 향한 그리움밖에 없는 듯 오로지 하나의 이념만 갖고 서 있는 듯하다. 나무의 그러한 몰입이 결국 꽃과 열매라는 결실을 얻어낸다. 나무의 몰입에 대한 결과물들은 수많은 생물들의 삶을 춤추게 한다.
보광사의 향나무는 영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나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향나무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영정을 모신 아주 아담한 어실각 오른편에 자라고 있다. 마치 어실각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영원한 향기’란 향나무의 꽃말처럼 300년을 한결같은 모습과 향기로 보살피는 듯하다. 보광사 향나무의 수형을 자세히 보면 어실각 쪽으로 나뭇가지와 잎들이 유독 많이 자라나 있다. 그런 까닭에 균형감의 상실을 알아차리고 향나무의 상층부가 그 반대편으로 휘어져 자람으로써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향나무는 흥미로운 나무다.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한 그루에서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는 암수한몸인 나무도 발견된다. 향나무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바늘 모양의 잎과 비늘 모양의 잎을 동시에 발달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린 향나무이거나 자라는 곳이 건조하고 척박하면, 비늘잎보다 바늘잎을 많이 발달시키며, 나이가 먹고, 사는 곳이 양호한 경우에는 대부분 비늘잎만 발달시키는 특징이 있다. 향나무의 가족으로는 향나무뿐 아니라 바람이 많은 고산지대에 적응한 누운향나무(눈향나무), 섬이나 해안에서 자라는 섬향나무, 곱향나무 그리고 오로지 바늘잎만 발달시키는 노간주나무가 있다.
(왼쪽) 영조가 직접 심었다는 수령 300년 향나무 (오른쪽) 바늘잎과 비늘잎을 동시에 발달시킨 향나무 |
장차 한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야 하는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에서 설령 그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지만 제도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는 루소의 말처럼 자연의 변덕스러움에 적응해서 살 수밖에 없기에 생명체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회 환경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삶은 본디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씨앗이 뿌리를 내려 나무로 되는 그 땅은 나무 입장에서는 선택한 것이 아니다. 즉 모순이라는 것으로부터 나무의 삶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킨다. 결코 모순인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어리석은 노력은 하지 않는다. 자신을 변화시켜 자연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토양의 비옥도와 척박함의 정도에 따라 뿌리를 발달시키고, 바람의 강도에 따라 가지의 길이와 굵기를 조율하고, 빛의 세기에 따라 잎이나 껍질이나 가지를 변형시키고 때로는 가시를 만들어내며 모순에 저항한다.
바람에 의해 비틀거림을 배우지 못한 나무들은 진보적 성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바람은 나무를 앞으로 나아가게끔 자극하고, 나무에게 진화를 재촉한다. 특히 봄에 부는 바람은 큰 키로 견뎌야 하는 나무에게 시련을 주고, 나무는 균형 잡는 방법을 익혀 자손인 씨앗에게 그 비법을 전수한다. 나무는 찾아오는 나비나 벌, 새, 다람쥐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익힌다. 물끄러미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면 그가 표현해내는 모든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행복’이란 의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온갖 시련과 고통과 고뇌를 견뎌낸 결과가 ‘꽃’인 것처럼 행복은 고통이란 온갖 불행을 먹고 피어난 꽃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남효창|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산림생태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 산림환경정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석사(1994년)와 박사(1998년)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임업과학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는 (사)숲연구소를 설립해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이 땅에 숲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부 환경교육자문위원, 세계생명문화포럼 추진위원, 생태 체험 교육 전문지 『애벌레』 발행인, 한국휴양학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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