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불교의 의례와 생활
김성순
전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대만 불광산사 수륙대재 (출처|『금강신문』) |
순수 불교와 도교, 토착 종교 등과 융합된
복합 종교의 모습 동시에 나타나는 대만 불교
대만 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4대 종문과 같은 순수 불교의 모습과 마조사원이나 관우사원 혹은 재교처럼 도교 내지 토착 종교 등과 융합된 복합 종교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교 신자 중에서도 다른 토착 신앙을 함께 믿는 경우가 많고, 전통 신앙이나 무속을 믿는 이들도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서 불교 사찰에 와서 재를 올리거나 기도회에 참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륙에서 불교를 수입하게 된 대만 불교의 태생적 환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1683년에서 1895년까지 청의 치하에 있는 동안 대만 불교는 민속 불교와 총림 불교의 두 형태로 나타나서 발전하는 추세였다. 대륙에서 전달된 불교와 대만 토착의 일반적인 민속신앙과 혼합되어 민속 불교 신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는 대만 불교계의 신앙 대상이 석가모니를 비롯해 약 30여 제불보살이 섞여 있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에 비해 법고산사, 자제종, 불광산사, 중대선사로 대표되는 대만의 4대 종문 같은 경우는 포교나 수행, 사회복지, 국제 봉사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확장되어 있으며, 대만 토착 종교와 습합되지 않고 전통 불교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례 형태별로 향화승과 경참승, 지역적으로 ‘본지’와 ‘외강’,
민족을 기준으로 ‘민남’과 ‘객가’ 등의 개념 존재
근대 이전의 대만 본토 불교 신앙 문화는 주로 명·청 시대에 민남(閩南; 현재의 푸젠성 남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전달되었다. 명·청 교체기에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를 내걸고 청에 대항했던 세력들과 푸젠성 주민들이 대만에 이주하면서 불교도 함께 전파된 것이다. 공식적으로 17세기 중반부터 불교가 전달된 지 이미 30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의 대만 불교의 원류는 사실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 번째는 ‘선화자(禪和子)’라고 불리는 ‘선사(禪寺)’에 속한 승려이다. 그들 대부분은 대륙 화남 지역에서 대만으로 온 승려들이기 때문에 ‘외강승(外江僧)’이라고 통칭하며, 이는 다른 성이나 내륙(대륙)에서 온 승려라는 의미이다.
둘째, 향화사묘(香火寺廟; 기복 신앙을 위주로 하는 사찰)에서 의식을 주재하는 향화승이다. 향화승(香花僧)이라는 명칭은 민간의 상례와 향화묘(香火廟)의 중원절 천도 행사, 재초(齋醮) 의식 중에 향화(香花) 공양과 관계된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일 것이다. 대만의 향화승은 대부분 중국의 동남부에 분포해 있던 의식승 중에 광둥성과 푸젠성 일대에서 온 이들이다. 이들 의식승이 행하는 ‘유가도량(瑜伽道場)’ 혹은 ‘경참도량(經懺道場)’은 망혼들의 정토왕생을 발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의식을 행한 공덕으로 신도들이 복과 수명을 구할 수 있도록 축원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러한 도량을 행하는 의식승을 ‘경참승(經懺僧)이라고도 하는데, 의식과 관련해 경문을 독송하거나, 참법을 하는 데서 명명된 것이다.
대만 불교의 의식승에 대해 의례 형태별로 구분하는 개념이 향화승과 경참승이라면, 지역적으로 분류하는 ‘본지(本地)’와 ‘외강(外江)’ 혹은 민족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민남(閩南)’과 ‘객가(客家)’의 개념도 존재한다. 여기서 ‘본지(本地)’라는 개념은 일제 치하 시기에 명·청 시대 이래로 대남(臺南) 해회사(海會寺, 開元寺), 법화사(法華寺) 등의 ‘본지’ 총림불사 승려 및 용산사(龍山寺)와 마조묘 등의 향화묘에 주석하는 본지 승려를 말한다. 주목할 점은 ‘외강’의 개념이 일제에서 독립한 시기를 기준으로 범주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원래 일제 치하 시기의 ‘외강(外江)’은 중국 화남지구에서 바다를 건너 대만에 온 이들로서 ‘외강승(外江僧)’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전후 국민당 정원이 대만에 온 후, 일제 치하 시기의 외강승이 대만 본토의 승려로서 위치를 굳히게 되면서 대만 지역에 자신들의 도량을 세웠기 때문에 전후에는 본지승(本地僧)으로서 자리매김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후에 국민당 정권과 함께 대만에 온 저장성과 장쑤성 출신 승려들이 새롭게 ‘외강승’으로 불리게 되면서 대만 불교 의식승의 체계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식을 주재하는 의식승의 연원은 명대의 유가교승 및 청대 응부승
대만 불교의 의식을 주재하는 의식승의 가장 이른 연원은 명대의 유가교승 및 청대 응부승이라고 할 수 있다. 명대에는 불교 사원을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는 선승(禪僧)이며, 선을 위주로 수행하고, 선사에 거주하면서 민간과 접촉하지 않았다. 두 번째 강승(講僧)은 각 종파의 경론과 강설 위주로 학습했으며, 강사(講寺)에 거주하면서 마찬가지로 민간과 접촉하지 않았다. 세 번째가 ‘유가교승’이며, 국가 혹은 민간의 불교 신도의 상장례나, 7월 천도 법회 등에서 ‘유가염구(瑜伽焰口)’의 천도·연수·소재·명복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했다. 의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사가 유가염구시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유가교승’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명·청 양대에는 유가교승이 관방 당안(檔案) 및 지방 지서(誌書)에서 ‘응부승(應赴-付-僧)’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기서의 응부승이란 재가자의 청에 응해 (가서) 의식을 행하는 승려라는 의미이다. 결국 후대의 향화승이나, 경참승 등의 의식승 계열이 모두 유가교승에서 기원한 응부승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재교의 선천파에서 탈바꿈한 일관도
대만에서 불교에 버금가는 교단으로 성장
그 밖에 청대 중엽에 재교(齋敎) 3파가 대만에 차례로 유입되어 그 영향이 매우 컸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일본 불교의 여러 파벌에 의해 성공적으로 전통적인 승가 불교로 전환되었고, 심지어 당시 대만 불교 발전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따라서 청나라 재교 3파가 대만에 유입되어 향후 대만 본토 승가 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대만에 온 후, 머리를 기르고, 식육 대처하며, 사원 밖에서 무리 지어 살면서 민간의 상장례와 천도 의식을 업으로 삼는 반승반속의 형태로 살았기 때문에 ‘장모승(長毛僧)’ 혹은 ‘치문승’으로 불렸다.
그러나 1949년 이후, 대만의 전통적인 재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출가 승려들에 의해 강하게 비판받는 상황이 되자, ‘재교도(齋敎徒)’들은 향화승이나, 경참승 같은 의식승으로 변신하고, ‘재당(齋堂)’은 ‘불사(佛寺)’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대만의 재교 3파의 교세는 현대 대만에서 이미 쇠멸해가는 추세이다. 한편 전통 재교의 선천파에서 탈바꿈한 일관도(一貫道)는 유교 사상과의 융합, 입교 과정의 단순화로 인해 대만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불교에 버금가는 교단으로 성장했으며, 점차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수륙법회나 수륙재초에서 불교의 향화승과 경참승,
도교의 도사들이 협력해 의식 진행
오늘날 전해지는 대만 불교의 ‘수륙의궤’는 천태종 교관의 이론과 실천 방식에 따라 참법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 근원은 남송의 지반(志磐)에서 시작되어, 명 연지 주굉(蓮池袾宏)의 보완, 청 의윤(儀潤)의 편찬, 민국의 법유(法裕) 법사의 주석을 추가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수륙의궤회본』이 되었다. 대만 불교의 수륙법회 불교의 향화승이 수륙과의(科儀)를 진행하는 주체가 되며, 도교의 도사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대만의 불교 사원이나, 도교 사원에서 거행하는 수륙법회 혹은 수륙재초에서 불교의 향화승과 경참승, 그리고 도교의 도사들이 함께 협력해서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현상임을 말해준다.
수륙법회의 절차를 이끌어가는 범패의 전반적인 유형을 보면 승려가 대중을 향해 설법을 하거나 불보살께 고하거나 청하는 내용은 승려가 노래하지만, 그 외 불보살을 찬탄하거나 기도를 올리는 진언과 같은 범패는 대부분 승려와 대중이 함께 노래한다. 이는 중국의 불교음악 전통이 본토에서 단절되고 대만에서 새로운 승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표준어 운동과 맞물려 국어 범패가 형성됨에 따라 불교음악 곡조도 단순화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이 구축되는 종단들은 빠른 시기에 보다 많은 신도들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신도들이 쉽게 의례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 간결하고 통합적인 형식을 도입해야 했던 것이다.
정리하면, 명·청 이래로부터 대만 불교의 의식승을 지역을 기준으로 나눈 개념이 ‘본지(本地)’와 ‘외강(外江)’의 양대 계통이며, 승려로서의 주요 활동을 선(禪)과 의식(儀式)으로 나누는 개념이 ‘선화자’와 ‘향화승’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향화승이나, 경참승 등의 의식승을 좀 더 큰 범주의 개념에서 ‘응부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갈래들을 정리해보면, 대만 불교의 ‘의식승’은 명청 이래 유가교승 혹은 응부승에서 기원한 향화승과 경참승 등 불교 의식 전문 승려들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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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강대, 동국대 강사 및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남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 대한불교조계종 성보보존위원(무형분과)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동아시아 염불결사의 연구』,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이 있고, 『왕생요집(往生要集)』,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사』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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