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결혼과 출산
유승무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
결혼과 출산은 전체 사회의 다른 기능 체계 및
사회 변동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
최근 한국의 결혼 및 출산 현상은, 그 빈도가 유사 이래 가장 낮을 정도로 그리고 한국만의 이슈를 넘어 세계적인 이목을 끌 정도로, 특이하다. 굳이 통계 수치를 나열할 것도 없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실감의 차원에서 이렇듯 기이한 현상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를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왔고 특히 현 정부에서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호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주지하듯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결혼 및 출산 현상을 주로 인구학적 문제로 간주하고 그 해결책을 인구와 직결되는 물질적 측면에서 찾아왔다. 한국 정부의 천문학적 예산투입 등 경제학적 지원 정책이 그 예다. 그러나 혹은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사회학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결혼 및 출산 현상을 사회의 기능 체계인 가족 체계의 문제로 간주하고 그것이 전체 사회의 다른 기능 체계 및 사회 변동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결혼 및 출산 현상은 사회적 체계로서 가족 체계의 핵심 요소들인 사랑과 친밀성을 하나의 제도화된 형식으로 구체화한 사회적 산물이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총체적 접근이야말로 결혼 및 출산 현상에 대한 거시적이고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분절 사회’, 중세 ‘신분적 분화 및 계층 분화 사회’에서도
가족의 위상과 역할은 지속되어
주지하듯이 사회학자들은 가족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불러왔다. 여기에서 ‘최고’란 중의적 수사로서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하는 제도적 장치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고대 사회의 경우 전체 사회가 씨족을 단위로 분절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러한 ‘분절 사회’에서는 가족제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체계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가족은 성적 통제의 기능, 사회적 재생산의 기능, 정서적 지지의 기능, 구성원의 정체성 제공의 기능 등 본원적 이외에도 정치적 기능, 경제적 기능, 교육적 기능, 복지 및 케어 기능 등 부차적 기능도 동시에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제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의 위상과 역할은 중세의 ‘신분적 분화 및 계층 분화 사회’에서도 그대로 지속되어왔다. 가족이 특정한 사회 구성원의 신분 계층을 구별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근대 ‘기능 분화 사회’에 접어들며 가족의 부차적 기능
사회제도로 이관되며 가족의 위상 하락…가족 관계의 초석이기도 한
사랑과 친밀성의 내용과 그 형식에도 결정적인 영향 미쳐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급격히 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기능 분화의 사회’로 변화했다. 그리고 고대 가족의 부차적 기능들은 근대의 각종 사회제도들, 즉 경제제도, 정치제도, 법제도, 교육제도, 복지제도 등으로 모두 이관되어 가족과 무관하게 처리되고 있다. 그 결과 가족의 역할은 그만큼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가족의 위상도 급격히 하락했다. 이렇게 되자 이제 가족은, 즉 오늘날의 가족은 가족 이외의 온갖 다른 사회제도들과의 구조적 연동 속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가족이 전체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 이외의 각종 기능 체계와 그 변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근대 사회로의 거시적 사회 변동은 가족의 본원적 기능을 떠받치고 있는 구성 요소들일 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즉 부부 관계와 부모 자녀 관계의 초석이기도 한 사랑과 친밀성의 내용과 그 형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랑 및 결혼의 변화는 혈연 관계에 착근되어 있던 친밀성의 내용 및
그 형식도 바꿔…친밀성의 변화는 낮은 출산율로 나타나
예컨대 사랑을 보자. 주지하듯이 사랑은 가족 관계의 횡적 근간, 즉 부부 관계의 근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는 부부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 관계의 형성 특히 출산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앞서 언급한 고대의 ‘분절 사회’나 중세의 ‘계층 분화 사회’의 경우 당사자의 사랑의 감정에 따른 당사자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그와는 무관한 가족 간의 계약에 의해 혹은 신분의 위상에 따라 사랑할 이성의 선택이 강제되었다. 심지어 ‘씨받이’나 ‘청상과부’의 수절도 드물지 않는 현상었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의 하위 기능 체계들이 급격히 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매체 또한 혈연이나 신분을 넘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인쇄 매체와 같은 확산 매체의 등장은 그 전형적 예다. 이와 함께 소설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는 혈연이나 신분의 제약을 넘어서는 사랑, 이른바 ‘낭만적 사랑’이 청춘 남녀의 사랑의 감정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급기야 ‘채털리 부인의 사랑’처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도 생겨났다. 게다가 산업화와 개인화가 점점 더 진전됨에 따라, 이러한 낭만적 사랑도 이행기적 현상으로 그치고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사랑’이 주목을 받으면서 개인의 자기결정성이 매우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른바 ‘액체 사회’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들어서면서 ‘경제적 분담자와의 사랑’처럼 ‘차가운 사랑’이나 ‘성적 파트너와 사랑’과 같은 ‘휘발성 높은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의 내용 변화는 사랑의 형식으로서 결혼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혼에 이르는 요인이 씨족적 가문이나 부모의 결정권에서 당사자와의 낭만적 사랑으로 바뀌었다가 최근에는 경제력이나 성적 매력이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이제는 이성과의 결합만이 아니라 동성과의 결합, 독신, 심지어 비혼까지도 일종의 결혼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결혼 당사자들이 일부일처 중심의 전통적 부부 관계만을 ‘정상적(normal)’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랑 및 결혼의 변화는 부모-자식 관계와 같은 혈연 관계에 착근되어 있던 친밀성의 내용 및 그 형식도 바꾸기 시작했다. 고대 및 중세 사회에서는 가족 및 친족 구성원들 사이의 혈연적 친밀성이 매우 강했지만, 최근에는 혈연적 친밀성조차 다양한 친밀성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게다가 근대 사회에 있어서 가족 구성원의 축소 및 부재는 혈연적 친밀성의 내용을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동성 가족, 노인 단독 가족, 편부모 가족, 독신 가족, 비혼자들의 경우 가족 구성원을 재생산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혈연적 친밀성은 무의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친밀성의 변화는 낮은 출산율로 현상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법제도, 정치제도, 경제제도, 교육제도, 복지제도 등 각종 사회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제3공화국 이후 산아제한정책이나 한국 특유의 교육제도 및 복지제도 등은 한국의 낮은 출산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거나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행복 담보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성 회복할 수 있는 종합적 가족 정책과 ‘세계 가족’ 등을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려는 열린 유연성도 필요
요컨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낮은 출산율은 가족을 구성하는 요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과 친밀성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가족을 둘러싼 여러 사회제도들과의 구조적 연동 등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복잡성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능 체계는 정치 체계나 경제 체계가 아니라 최소한 아직까지는 여전히 가족 체계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결혼 및 출산의 수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율만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 대책보다는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이 그 구성원들의 행복을 가장 잘 담보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 가족 정책이 필요하다. 또 하나, 오늘날의 사회현상이 반영된 재혼 가족, 입양 가족, 동거 가족, 코시안 가족과 같은 이른바 ‘세계 가족(World-Family)’ 등을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려는 열린 유연성도 요구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적 인정 속에서 세계 가족의 건강성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면의 제약상 자세한 논의를 할 수는 없지만 『육방예경』이나 오계를 볼 때 불교는 일부일처의 가족 체계를 정상 가족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기사상을 고려할 때 불교는 ‘닫힌’ 가족의 폐쇄성보다는 ‘열린’ 가족의 유연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불교의 가족관이 이 글의 요구에 잘 부합함을 의미한다.
유승무|한양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석사 학위를, 한양대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불교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교사회학』 등 총 31권의 공저를 펴냈고, 총 85편의 학술 논문이 있다. 최근에는 연기사상을 사회 이론화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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