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몇 가지 원칙

2023년 캠페인 ‘단순하게 살자(미니멀 라이프)’

나 홀로 캠페인,
재고 소진 운동

손은혜
방송작가


넓은 집이 생긴다면 다시 다 채우게 된다
사실 나는 정리 정돈에 큰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치운다고 치우는데 애쓴 만큼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열심히 정리를 한답시고 어떤 물건을 서랍이나 장 안에 곱게 넣어두면 그게 어디로 갔는지 잊어버리기 일쑤라 자주 쓰는 물건들은 주로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집은 좁은데 이런 식이다 보니 내 방에는 늘 물건이 한가득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어머니에게 제발 좀 잘 치우라는 잔소리를 평생 듣고 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잘 치우지 못하는 주제에 또 물건은 많이 산다. 좋게 표현해서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궁금한 게 많아서 새로운 물건을 잘 사는 사람, 그렇게 산 물건들을 언젠가는 쓸 거라고 생각하면서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생필품은 미리미리 사두는 편이라 어떤 물건이 여분 하나 없이 똑 떨어지는 것은 일생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친구들과는 온갖 세일, 구매 꿀 정보 링크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소비를 독려한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유명한 먹방 유튜버의 말처럼 이렇게 기후 위기에 내몰리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우리 삶이 제철 음식을 언제까지 허락할지 모르니까’ 철마다 나오는 먹거리들을 사 먹고, 남는 것은 테트리스 게임하듯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두고 꺼내 먹는다. ‘냉장고가 너무 꽉 차서 문이 안 닫혔을 수 있다’, ‘네가 사는 집이 100평이면 넌 그 100평을 다 채우고 살 거다’라는 어머니의 한탄은 괜한 것이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몇 가지 원칙
이렇게 어수선하게 지내다가 최근 나는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제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스스로 각성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쌓이면 치우고, 또 쌓이면 치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몇 년 새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면서 과한 소비를 줄이고 물건과 욕심을 비워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에 자극을 받은 것도 있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것부터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가진 물건이 무엇인지, 얼마나 있는지 잘 파악해서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은 중고 거래 등을 이용해 과감히 처분하고,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나누고 있다. 생필품 세일에는 혹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저기서 공짜로 얻은 샘플이나 사은품도 열심히 쓰는 중이다. 냉동실 문을 열면 쌓아둔 음식들이 우르르 쏟아져 발등이 찍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냉장고 파먹기를 하고 있다. 엄청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비우기를 실천하고 정돈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 중이다. 오랜 시간 동안 소비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일단 살 궁리부터 하는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 정돈을 미루며 게으르게 지내던 걸 고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줄이고 비우는 것이 내 앞에 당면한 과제인 것을. 과한 소비 욕망으로 인해 지쳐가는 이 세상에서 절제의 미덕을 실천해야 마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온 지구가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 등으로 아우성인 이 상황에서 덜 사고, 덜 써야만 우리의 미래가 보장될 테니 말이다.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어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 보면 일단 내 작은 방 안 속 혼돈 정도는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좀 더 쾌적하고 말끔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당장 고쳐지지 않으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나 홀로 재고 소진 캠페인’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손은혜
22년 차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SBS 생방송 <모닝와이드>, KBS <아침뉴스타임>, <굿모닝 대한민국>, EBS <극한직업>, TV조선 <엄마의 봄날>, MBN <부부수업 파뿌리> 등의 프로그램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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