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 연기법과 불교]

어떤 현상이 왜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붓다의 가르침, 연기법
연기법은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접할 때 그 원인과 조건을 알지 못하면, 그 현상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추측이 개입되어 사실을 왜곡해 볼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왜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현상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세상이든 몸이든 정신이든,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기법을 알아야 한다.
초기 불교 경전인 니까야에서는 연기법을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가장 간략한 형태의 설명으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는 표현이다. 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서로 의존하며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사건이나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 모두가 인과의 법칙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명에서 시작하여 태어남, 늙음,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인 12연기에 대한 설명이다. 12연기는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의 방식과 12연기 중 중간 과정부터 시작되는 순관과 역관까지 포함하여 네 가지로 설명된다. 이것은 인간 존재가 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존재의 발생과 지속, 그리고 고통의 구조를 설명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다.
셋째는 빠띠삼비다막가에 나타나는 연기법의 설명이다. 이것은 사리불에 의해 설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보다 분석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섯 가지 과거 원인인 무명, 갈애, 취착, 행, 업에 의해 다섯 가지 현재 결과인 식, 정신과 물질, 여섯 감각기관, 접촉, 느낌이 발생하고, 다시 다섯 가지 현재 원인인 무명, 갈애, 취착, 행, 업이 미래의 다섯 가지 결과인 식, 정신과 물질, 여섯 감각기관, 접촉, 느낌을 낳는다는 구조이다. 이 설명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인과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몸과 마음 현상이 어떻게 있나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세상과 우리의 존재, 즉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들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러할 만한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삶의 태도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어떤 결과를 원한다면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대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기대를 그대로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분노와 좌절이 생겨난다. 『희랍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이 없다. 나는 자유롭다.” 이 문장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과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인과의 법칙을 알게 되면 단순히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낳는 조건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게 된다. 그때 우리는 막연한 기대 대신 인과에 따른 삶을 살게 된다.
정신건강 측면에서의 연기법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연기법을 보겠다. 사리불이 설한 방식에 따라 연기 수행을 해보면 우리에게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의 몸과 마음의 상태와 그것을 초래한 연기법을 알 수 있다. 먼저 마음은 몸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일어난다. 또한 마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이 필요하다. 정신은 주된 마음과 그 마음과 함께 작용하는 여러 마음부수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유익한 마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로운 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해로운 마음은 어리석은 주의와 함께 일어난다. 이러한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마치 아무 조건 없이도 언제든지 좋은 의도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마음은 물질을 만들어낸다. 유익한 마음은 우리를 부드럽하게 하고 가볍게 하는 물질을 만들어내고 해로운 마음은 우리를 거칠고 무겁게 하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정신이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정신 인식 과정이 일어난다. 이때 주의가 지혜로운 주의면 유익한 마음의 정신 인식 과정이 전개된다. 반대로 주의가 어리석은 주의면 해로운 마음의 정신 인식 과정이 전개된다. 유익한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아름다운 마음부수들이 함께 작용한다. 아름다운 마음부수는 모두 스물다섯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어떤 유익한 마음이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열아홉 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믿음, 마음챙김, 잘못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 잘못된 것에 대한 두려움, 탐욕 없음, 성냄 없음, 평정심, 마음과 마음부수의 고요함, 가벼움, 부드러움, 적합함, 능숙함, 올곧음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유익한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여섯 가지 아름다운 마음부수가 있다. 그것은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연민, 함께 기뻐함, 지혜다.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부수가 작용하면 우리는 마음이 가볍고 부드럽고 편안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무엇을 하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우리를 경쾌하고 안정된 사람으로 느끼며 자연스럽게 신뢰감을 갖게 된다.
반대로 주의가 어리석은 주의면 해로운 마음의 정신 인식 과정이 전개된다. 이때 해로운 마음부수가 존재한다. 모든 해로운 마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가 있으며, 각각의 해로운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열 가지가 있다. 공통적인 네 가지는 어리석음, 잘못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 없음, 잘못된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음, 들뜸이다. 그리고 각각의 해로운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열 가지 마음부수에는 탐욕, 잘못된 견해, 자만, 성냄, 질투, 인색, 후회, 게으름, 혼침, 의심이 있다. 이러한 해로운 마음부수는 사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 또한 잘못된 행동을 제어하는 내적 장치가 없어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명료하지 않은 정신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고, 마음의 혼란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으며, 외적으로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불안이나 우울 역시 해로운 마음의 상태다. 연기법의 관점에서 보면 해로운 마음은 어리석은 주의의 결과다. 반대로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유익한 마음은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 생겨난다.
따라서 우리가 편안하고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지혜로운 주의고 무엇이 어리석은 주의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주의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욕심이나 성냄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모든 현상을 그 본래의 속성인 무상, 고, 무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물질을 물질로, 마음을 마음으로, 마음부수를 마음부수로 분명히 구분하여 관찰하는 것이 지혜로운 주의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것 역시 지혜로운 주의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방식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대상을 접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은 주의다. 정신적 불건강은 해로운 마음이 지속적으로 축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유익한 마음이 점차적으로 축적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안정과 행복의 상태는 바로 이러한 유익한 마음이 충분히 형성될 때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로운 마음을 반복적으로 일으키고, 그 결과로 원하지 않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연기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삶의 조건을 보다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평온하고 건강한 삶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전현수|부산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에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었다. 한양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경정신과 2년차 때 불교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2003년에 미얀마에서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수행을 했다. 현재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저서로 『전현수 박사의 불교정신치료 강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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