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은
부러 꾸미지 않는다
- 문학 작품 속에서 생각해보는 말의 무게
김병길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
◦ 말의 농간이 부른 참극 – 현진건의 『사립정신병원장』
W는 온순하고 낙천적인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백부의 집에 양자로 간 그는 집안의 몰락으로 처가살이하다가 못 견디고 살림을 따로 차려 나와 어렵사리 T은행의 임시고용직을 얻었다. 그러나 그마저 쫓겨나 대인공포증을 앓는 친구 P를 돌보게 된다. 병자의 보호를 겸해 말 상대가 되어주며 한 달에 쌀 한 가마니와 얼마의 돈을 받아 W와 그 가족은 겨우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 W를 친구들은 ‘사립정신병원장’이라 부르며 놀려댔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친구를 위해 K가 요릿집 모임을 주최하자 초라한 행색의 W도 참석한다. 평소 배갈 한 잔에도 홍당무로 변하던 W가 그날따라 기생이 따라주는 대로 꿀꺽꿀꺽 정종을 들이켰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술병을 기울이던 W가 신문지에 약식이며 떡을 주섬주섬 쌌다. 이를 지켜보던 K가 눈썹을 찡기며 말리었다. W가 음식 담긴 봉지를 들고 비슬비슬 일어섰을 때, 기생 하나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비웃었다. 순간 W가 그녀의 뺨을 때리면서 K와 싸움이 벌어졌다. 친구들이 간신이 뜯어말려 K가 자리를 뜬 후 W는 음식 봉지를 방바닥에 팽개쳤다. 그 위에 거꾸러져 얼굴과 손이 약식투성이가 된 W는 한동안 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가족 모두를 비끄러매놓고 불을 지르겠다고 소리쳐 웃으며 집에 돌아간 W는 갱신도 못할 정도로 아내를 때리고, 아이들을 기둥에 하나씩 친친 매었다. 그리고선 손에 성냥을 쥔 채 마당에 쓰러져 코를 골며 잠들었다. 친구의 비웃음에 취중 난투를 벌이고, 그 치욕을 가족들에게 분풀이한 W는 급기야 미치고 만다. 결국 그는 자신이 돌보던 친구 P의 목숨을 단도로 앗는다.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은 친구들이 W를 ‘사립정신병원장’이라 부른 일이었다. 친구들의 조롱이 W의 마음을 할퀴었고, 누구에게서도 치유받지 못한 그 상처가 덧나고 곪아 살인으로 폭발한 것이다. 1926년에 쓰인 단편소설 『사립정신병원장』은 이렇듯 말의 농간이 부른 참극을 전하고 있다. 그 작자 현진건은 두 해 전 오늘의 독자가 알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을 못 한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행운이 몰려온다는 「운수 좋은 날』 말이다.
◦ 말이 조화를 부린 인과응보 -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댓바람에 김첨지는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다. 그 순간 며칠 전 설익은 조밥을 욱여넣듯 먹다가 급체한 마누라가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던 말이 떠올랐다. 김첨지는 아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기며 싸늘한 욕지거리를 던지고 집을 나온 차였다. 야단은 쳤으나 설렁탕 한 그릇 못 사주는 사정에 김첨지의 마음은 시원치 않았다. 아내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려던 김첨지를 학생 손님이 1원 50전에 불러 세운다. 엄청난 행운에 신나게 인력거를 끌 때,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던 마누라의 말이 김첨지의 가슴 한편을 누른다. 하지만 몰려오는 기적을 김첨지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한 손님을 태워 큰돈을 손에 쥔 그는 호기롭게 친구 치삼을 끌고서 선술집으로 향했다.
훈훈하고 뜨뜻한 선술집에서 얼큰히 술이 오른 김첨지의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다 난데없이 연해 코를 들이마시며 마누라가 죽었다고 말한다.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 놓고 술을 먹는 자신이 죽일 놈이라며 엉엉 소리 내 운다. 이내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 손뼉을 치며 웃는다. 그렇게 울며 웃는 주정을 하다가 설렁탕 국물을 사 들고 집에 와 김첨지가 마주한 방 안은 이미 숨져 누운 마누라와 빈 젖꼭지를 빨고 있는 아들 개똥이었다.
아내에게 설렁탕 사줄 돈을 벌기 위해 김첨지는 멈추지 않고 인력거를 끌었으나, 그가 아내에게 남기고 온 말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고야 말았다. 비록 김첨지의 말이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건 아니나, 그가 내뱉은 욕지거리는 아내가 이번 생에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내의 죽음을 예고한 주술이었다. 그 한마디가 아니었던들 아내의 주검 앞에서 평생 잊지 못할 회한에 통곡했을까. 속내를 감추려 무심코 던진 말이 싸늘한 주검을 김첨지의 품에 안긴 것 아닌가. 그렇듯 말이 뿌린 씨앗은 그 안에 담긴 갚음을 응당 맺기 마련이다. 말이 조화를 부린 인과응보(因果應報)다.
한국문학에서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능가할 만한 반전의 제목이 있던가?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아내의 주검을 붙들고 토해내는 김첨지의 위 절규는 그 자체로 생의 비극적 아이러니다. 겉으로는 쌀쌀맞게 굴지만 실은 좋아하는 이를 가리키는 시쳇말 ‘츤데레’의 표본이 될 만한 인물이 김첨지다. 마음에 품은 뜻과 반대로 말하는 반어법이 츤데레의 일상 화법이다. 이 반어법이야말로 말을 잘 부리는 학문, 곧 수사학(修辭學)의 백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웅변가들에게나 환영받을 말본새다. 현실에서 반어법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말의 진의를 듣는 이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김첨지와 같은 꼴을 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야단을 쳤지만 결국 설렁탕을 사 들고 귀가하는 김첨지의 깊은 속정을 아내는 오롯이 헤아렸을까? 마지막 눈감는 순간 그녀의 귓전에는,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남편의 욕설만이 맴돌았을 성싶다.
자칫 반어법이 우리의 일상 표현으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타인과 진실한 소통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반어법과 같은 수사로 애써 마음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 내 마음 깊은 언어를 타인에게 먼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용기가 타인의 마음을 열 열쇠가 될 것이다. 하여 잊어서는 안 될 철리가 있다.
“아름다운 말은 부러 꾸미지 않는다”.
김병길|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부교수이다. 저서로 『우리 근대의 루저들』, 『우리말의 이단아들』, 『정전의 질투』, 『역사문학 속(俗)과 통(通)하다』, 『역사소설, 자미(滋味) 에 빠지다』 등이 있다. 「‘원효 서사’의 근대적 계보 연구」로 제14회 만해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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