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서쪽 기슭,
비구니 스님들이 가꾼
‘마음의 정원’
진관사와 정갈한 숲
글/사진 은적 작가
진관사 초입의 아미타불. 본디 그곳에 있었던 듯한 바위에 감실처럼 배경을 만들어 부처님을 돋을새김했다. 친근한 모습으로 절로 드는 이들을 맞이한다.
한국인에게 산은 단순한 지리 공간이 아닌
민족의 시원이자 유사 이래 삶의 터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너른 산골은 어디일까요?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 질문이므로 수많은 대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뜸 들일 것 없이 답하겠습니다. ‘서울’입니다.
서울은 두 겹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입니다. 북악산(북)·낙산(동)·남산(남)·인왕산(서)을 내사산(內四山)이라 하는데, 이 산을 연결해 쌓은 성곽이 한양도성입니다. 내사산의 외곽에는 삼각산(북한산, 북), 아차산(동), 관악산(남), 덕양산(서)이 외사산(外四山)을 이루어 서울을 감싸안고 있습니다. 서울은 산골입니다.
미국 뉴욕은 세계의 수도로 일컬어집니다.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의 중심은 ‘센트럴파크’입니다. 1876년에 완공된 세계 최초의 도심 공원입니다. 당시 뉴욕은 인구가 폭증했습니다. 사람 살 집도 모자라는 판에 도시 한복판에 공원을 만들겠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 여론이 일어났겠지요. 공원 조성 책임자였던 조경가 옴스테드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고 합니다.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도심 자연 공원입니다. 1997년 국가적 불행이었던 IMF 외환 위기 때는 우리나라에서 등산 인구가 크게 증가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산이라도 없었다면 그 울분과 시름을 어떻게 달랬을까 싶습니다.
한국인에게 산은 단순한 지리 공간이 아닙니다. 단군신화가 일러주듯이 민족의 시원이었고, 유사 이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수상한 시절에는 심신의 피난처이자 해방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골골샅샅에는 으레 절이 자리해왔습니다. 산은 절을 수호했고 절 또한 산을 섬기고 보살폈습니다. 절집의 산신각이 금당(金堂)보다 높은 곳에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산과 절은 그렇게 한 몸을 이루어 세상의 기댈 곳이 되었습니다.
진관사 들머리 정원에서 만난 꿩의다리꽃과 원추리꽃. |
진관사 해탈문과 보현원 옆, ‘룸비니 동산’이라 불리는 솔숲 아래 풀밭. 유치원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미래의 부처님을 위한 곳이니, 실로 룸비니 동산이다. |
비봉에서 응봉, 향로봉에서 진관사로 흘러내리는 능선 사이의 진관사 계곡. 진관사 뒤편 모퉁이에서 50여 걸음만 옮겨도 원시적 기운 가득한 계곡이 펼쳐진다 |
마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아란야(阿蘭若)’의 전형 진관사를 둘러싼 정갈한 숲과 사찰음식
서울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삼각산(북한산)의 서쪽 비탈이 다해 평탄한 곳에 ‘진관사’가 있습니다. 진관사의 입지는, 마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아란야(阿蘭若)’의 전형입니다. 고려 현종(992~1031) 임금이 즉위 전 대량원군이었을 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진관 대사(津寬大師)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창건(1011년)했다 합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태조의 명으로 외로이 산천을 떠도는 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베푸는 도량이 되었습니다. 진관사 수륙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오늘까지 이어져옵니다.
오늘의 진관사는 6·25전쟁 때 나한전 등 3동만 남기고 불타버린 가람을 비구니 진관(眞觀, 1928~2016) 스님이 새로이 일으켜 세운 도량입니다. 1963년 진관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진관 스님은 1965년 대웅전 복원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진관사를 중창해 가람의 면모를 일신했습니다.
진관사를 둘러싼 숲은 정갈합니다. 자연이 낳고 스님네들이 기른 숲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의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진관사에는 절집의 현대적 존재 의미가 생동합니다. 이에 더해 계호 스님(진관사 회주)이 1990년대 초부터 공력을 쌓아온 사찰음식은 살아 있는 불교문화로서 세계인을 감동케 합니다. 비유컨대 음식은 영혼의 옷입니다. 사찰음식은 혼신을 다해 씨와 날을 엮은 모시옷 같습니다. 현대 사회의 화려한 남루를 감싸주는 진관사의 곱고 따뜻한 마음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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