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이 주는 위로 | 산티아고에서 온 편지

잠시 멈추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별을 보며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별 바라기가 되어 한없이 하늘을 보게 내버려두고 싶다. 아이들이 보는 저 별은 분명 몇 십 년 전, 몇 백 년 전에도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었을 별이다. 각자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별 하나 찾아 세상의 각박함에서 멀리 떨어져 현상을 보면, 내가 부족한 것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세상을 다시 보는 눈을 기르자.

유치원생 셋째가 뜬금없이 우주는 얼마나 큰지 물어왔다. 요즘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 수업 이 별과 태양에 관한 내용이라, 아이는 우주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가 참 어려운 모양이다. 아빠는 이런 아이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이야기한다.

“우주는 무한대야. 우리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는 공간이지.” 아이는 갑자기 두려운 듯 놀라면서 몸을 움츠렸다.

“숨을 쉴 수 없어. 끝이 없다는 거야? 그럼 우리는 갇혀 있는 거네.”

남편과 나는 하하하 소리 내 웃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곰곰 생각해보니,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는 ‘우주의 크기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다는 그 공간의 의미’보다 ‘끝이 없는 공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은 듯하다. 아이는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상이 나오는 그 현실이, 이 우주에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던 게다.

“그럼 우주의 끝이 없으면 다른 세상도 없다는 거야?”

정말 어려운 문제다. 우주가 곧 세상이며, 세상이 곧 우주가 된다는 그 인식은 아이가 지금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우주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문제를 준다. 우리는 어디에서 나고, 어디로 가는가…. 우주는 왜 생겨났고, 우리는 왜 이 안에서 생존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각자의 생각 안에서 여러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다.

집에서 마을까지의 공간은 아이에게는 우주보다도 먼 거리이며 느낌이리라. 우리가 아무리 우주가 크다고 해도 아이가 현실로 느끼는 우주는 어쩌면 그 거리보다 더 작은, 숨을 쉴 수 없 는 공간이기도 싶겠다. 아이가 앞으로 성장하면서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은 밤하늘의 별을 보는 시간을 즐긴다. 특히 해발 1,200m의 밤바람이 차지 않은 여름에는 밖에 나가 하늘을 보며, 가끔 일상을 잊고 반짝이는 별을 바라본다. 밤하 늘의 별, 우리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저 외부의 공간이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지 모르겠다.

현대인은 가끔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대부분 자연적인 삶을 동경하면서 날마다 일상이 새로울 것이라고 오해한다.

솔직히 처음 전원생활을 할 때는 설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새 로움은 잠시다. 새로움에 익숙해지면 시골 생활도 또 다른 익숙함으로 일상이 되고 만다. 오히 려 도시보다 자극이 덜해 우리는 쉽게 이 일상에 묻혀 그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려워질 수 도 있다. 스스로 깨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시골 생활도 우리의 시야를 닫으며 고립시키기 에는 요즘 말로, 딱 맞다.

시골에서도 나의 문제만 중요한 듯 이기적으로 변할 때가 많다. 내가 세상의 중심인 듯 자연 안에 살면서도 그 습관을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 가슴을 ‘탁’ 치며 받아들일 때가 있다.

“그래, 저 거대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아등바등 살면서 이웃을, 동물을, 나라를, 지구를, 생태계를 돌보지 않는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요즘은 도시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가 참 어렵다. 실제로 이곳에 방문한 서울에 사는 한 대 학생은 고산의 별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이 별빛. 평생 처 음 본 듯 황홀함에 빠져 도시의 삶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털어놓기도 했다. 진학하기 위해 공부 만 해서 실제로 삶에 유용한 것을 배우지 못했노라고.

우주의 하늘은 우리에게 인간 본연의 어떤 존재에 대한 사고를 내던지게 한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봐야 하는 이유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기 위함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러 도시에서도 불을 끄는 캠페인을 벌이는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꼭 에너지 절약 차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차원에서도 말이다.

무한한 우주에 태어난 우리는 유한한 사고와 삶 속에 틀을 박고 살아가고 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 삶이 각박할 때도 있고, 내 앞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불이익에 눈을 감고 모른 척할 때도 있다.

환경오염이 그렇고, 생태계 파괴가 그러하며, 수시로 위협하는 전쟁도 앞을 내다보지 않는 갇힌 삶의 전형이다. 과소비와 자본주의에 물들어 쓰레기가 넘쳐나며, 이웃의 배고픔보다는 자신이 과하게 먹은 음식을 인증하며 즐거워하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면? 잠시, 쌓아놓은 문제를 옆으로 밀치고, 내 안의 불을 끈 후 어두운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본다면? 잠시 내 자랑을 내려놓고, 소비에 만족하던 마음을 접고 하늘을 올려 다본다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거대한 우주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좀 변했으면 싶다. 옛사람은 밤하 늘의 별을 보면서 항해하거나 방향을 감지해 길을 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은 내비게이션 기능 덕분에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지만, 이 애플리케이션이 우리의 마음까지 길을 찾아주지 는 않는다. 밤하늘이 주는 거대한 존재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좀 더 마음이 열리며 내가 아닌, 제3자의 눈으로 지구를, 인간을, 자연을,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가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무한한 우주의 힘은 큰 위로가 된다. 다시 생태계를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짧은 인생에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생겨날 수 있으니 말이다.

유전자 깊숙이 별이 주는 위로가 느껴지는 밤이다. 밤하늘을 나는 새도 그랬을 것 같고, 목 놓아 울어대던 짐승도 그랬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반짝이는 별빛 바다에서 이야기를 지어 내고, 동화 속 상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우리는 우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존재 의미를 생각하며 좀 더 여유롭고 넓어지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도 가끔 밤하늘 의 별을 보며 사색에 잠겨보자. 어둠 속에서 다져진 긍정의 마음, 밝아오는 내일에 새로운 힘이 되리라!

김산들
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여러 방송 매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다룬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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