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산다는 것 | 절집의 나무와 숲

절집에서 꽃이
시드는 이유를 찾다

신준환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

진관사 불두화

온갖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꽃
우리는 모두 꽃을 좋아한다. 필자도 꽃을 보면 환희에 차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그런데 꽃에 대한 무명(無明)의 상태에서 욕심만 일으켜 꽃의 화려함을 치켜세울 때 우리는 꽃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깨달음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작게 보면 개인의 일이지만 크게 보면 기후 위기에 봉착한 지구 차원의 일이기도 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꽃이 덧없음의 표징임에도 우리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덧없음에 대한 애잔한 자비심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사실 꽃이 지구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는지 과학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덧없는 꽃이 화석을 남기기 어려워 진화적 증거를 조밀하게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이 중생대 백악기에 등장해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꽃을 피워내면서 지구의 생물다양성 번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꽃이 피는 식물은 지구에서 30억~40억 년 동안 일어난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상당히 늦은, 약 1억 4,000만 년 전 중생대 말 백악기에 나타난 것으로 본다. 그 후 꽃은 곤충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진화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진화함으로써 꽃과 곤충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되니 생태계가 풍성해져서 꽃과 곤충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이와 관계를 맺은 포유류 역시 풍부해졌다.

이제 포유류들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된 곤충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꽃과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양질의 영양을 얻은 포유류는 두뇌가 더 발달했고 다양한 영장류도 등장했다. 영장류의 다양한 진화 결과로 인류의 조상이 등장했고, 마침내 인류가 지구에서 번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류 중심의 이런 화려한 시나리오는 수만 년을 압축시켜 수백만 년 단위로 본 활동사진의 이야기다.

설익은 열매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
실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할 우리 조상들이 꽃이나 잘 익은 열매를 찾는 것은 숲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필요하고 상당한 운이 따라야 성공할 수 있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 꽃을 본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더구나 꽃이 화려하게 많이 피어 있는 곳은 장차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신호등이 희망차게 빛나는 풍요의 문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밥집도 없고 빵집도 없는 광야에서 풍성한 꽃밭을 본 우리 조상들은 그야말로 환희에 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배가 부른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맞춰 산다는 것이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다. 설익은 열매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씨가 여문 열매를 퍼뜨려야 다음 생이 가능하기에 덜 익은 열매는 독성을 품고 있다가 열매가 익으면서 이 독성이 분해되어 몸에 이로운 물질로 바뀌게 되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식물도 알고 동물도 아는 색상의 변화, 푸른 열매가 붉은색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계의 신호등으로 식물은 열매를 내어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동물은 이를 받아먹고 널리 퍼뜨리겠다는 수천만 년 언약의 표징으로 볼 수 있다. 허튼소리 같지만, 육지의 수많은 들짐승과 날짐승 중 붉은색을 인지할 수 있는 종류는 인류를 포함한 영장류와 조류만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욕심을 키우면 자연이 시든다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소와 같은 유제류나 다른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늑대 같은 맹수는 붉은색 색맹이다. 색맹은 인간의 표현일 뿐 부족한 것이 아니다. 붉은색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는 소나 늑대가 붉은색을 구별해서 보는 것은 낭비다. 필요 없는 짓을 하는 생물은 필요 없는 짓을 하지 않는 생물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투우판에서 붉은 천을 흔들고 소가 흥분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뿐, 소에게는 그냥 칙칙한 천이 흔들리는 것이고 인간의 탐욕스러운 광기에 희생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에서 핵심은 가녀린 수술에 있다. 수술의 꽃가루받이를 통해 다양한 곤충이 진화했고, 이런 관계를 타고 꽃은 더 다양해지고 곤충은 더 풍부해졌으며 생태계는 더 풍요로워졌다. 이 모든 혜택을 인류가 누려왔다. 그런데 최근 인위적으로 수술을 꽃잎으로 바꿔 더 풍성한 꽃을 만들고 있다. 이런 꽃은 더 화려할지는 몰라도 생명이 없는 종이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자연 과정을 단절해 생태계의 기후 조절 능력을 떨어뜨리는 데다가 이들을 육종하고 키우려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수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 꽃잎만 무성하거나, 화려하기만 하고 벌이나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꽃은 의심하자. 욕심을 키우면 자연이 시든다. 여러 꽃 축제에 등장하는 이런 꽃밭은 사악한 욕심으로 가린 사막이다. 사찰에서부터 이런 꽃을 심는 일을 거부하자.

신준환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수목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다시, 나무를 보다』,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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