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품어주고 사람도 살리는 산 | 숲이 사람을 살린다

숲을 품어주고
사람도 살리는 산


신준환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



나무는 많은 것을 연결하고, 숲은 많은 것을 품어준다. 산은 이런 숲을 품어준다. 이렇게 계속 이어가며 품어주는 관계는 생태계의 중요한 속성이다. 그래서 생태계는 전체적으로 안정될 수 있고, 품어주는 단계가 높아질 때마다 새로운 속성(창발성, emergent property)을 발현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산은 숲은 품어주나 다른 것은 대부분 미련 없이 보낸다. 물을 흘려보내고, 동물을 내려보낸다. 농사를 짓기 전, 오랜 옛날의 고대 아시아인들은 산이 자신들을 먹여 살리려고 곰을 내려보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산이 내려준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 심지어 건조지대에서도 높은 산의 눈이 녹은 물이 길게 흘러내려 곡창지대를 이루는 지역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년설이 덮일 정도로 높은 산은 없으나 산에 안겨 있는 숲에서 녹아내린 영양분이 농사를 도와준다.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

사람이 사는 주거지와 산지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긴밀하게 서로 이어져 있다. 나무와 숲, 산이 계속 이어가며 품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무가 숲이나 산의 부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평면적인 집합 개념에 매몰되어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고 나무라지만 사실 나무도 숲에 갇혀 있는 존재는 아니다. 심지어 나무는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로 고정되지 않는다.

나무는 우리 눈에 보이는 정도로 지구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햇빛과 지구의 물질을 연결해 새로운 세계를 일궈내는 존재이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 말에 현혹되는 우리 눈을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별도 깜박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태양과 같이 온 세계를 밝히는 존재이다. 사실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중에 태양보다 큰 별이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작은 별이라고 생각하고 그 별빛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나에게만 연결된다고 생각할까. 우리는 왜 낮에는 별이 빛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늘 새로 생각하는 버릇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보인다고 타성에 젖어 새로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 알기 쉽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허상이다. 우리가 산에 가서 “오늘 날씨 참 좋네요. 저 파란 하늘 좀 보세요”라고 할 때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은 햇빛이 공기 중의 입자에 부딪혀 산란한 결과이지 본래 하늘의 색깔은 아니다. 또 나무의 잎이 녹색으로 보이는 것은 햇빛의 가시광선 영역 중 청색광 영역과 적색광 영역은 광합성에 이용하고 녹색광 영역은 쓰이지 않아서 그대로 내보낸 결과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나뭇잎의 색이라고 하는 것은 나뭇잎이 담지 않고 뱉어낸 색이다.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별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산란한 햇빛이 너무 강렬해 우리 눈이 별빛을 식별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같은 이치로 밤에 조명을 밝히고 있는 도시에서는 별자리가 잘 보이지 않고 산에 가면 주변에 빛이 거의 없어 찬란한 별자리의 무늬를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밤에 햇빛이 보이지 않는 것은 지구 주위에 햇빛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 대기권 밖에는 햇빛을 산란할 입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아 햇빛이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삼라만상이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본디 어떤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쯤이면 난해한 철학적 질문 하나를 정리할 수 있다. 저 밤하늘의 별빛은 내가 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일까? 이 나무는 어떻고 이 숲은 어떤가? 내가 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가? 양자물리학에서는 우리가 보는 순간 우주는 결정된다고 한다. 그럼 보지 않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밤하늘의 별과 달, 산중에 흘러가는 구름, 골짜기에 흐르는 물,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작은 새,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우리가 날마다 삼라만상에 감사할 수 있으면 우리 삶은 더 풍요롭게 되리라.

삼라만상 모두 서로 이어주며 관계 속에 명멸하는 존재이다. 우주가 처음 나타나고 별들이 탄생하고 소멸하며 많은 관계가 이어져 태양계와 지구가 생겼다. 우리는 삼라만상의 큰 은덕을 입고 있다. 지구에서 벌어진 수십억 년 동안의 생물 진화 과정을 통해 인류가 일어났지만,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는 철분을 보면 아주 오래전 사라진 별들도 인류의 삶에 한몫했다. 철분은 초신성의 폭발을 통해서 생겨나고 공급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뿐 아니라 우주 138억 년의 역사가 모두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한 화엄의 세계가 아닌가?

이런 인드라망에서 나무는 많은 것을 연결하고, 숲은 많은 것을 품어주며, 산은 많은 것을 미련 없이 보내고 있다. 나무, 숲, 산을 주제로 연재를 하면서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깨달음이다.

그래도 산은 우리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산은 겸손을 가르쳐준다. 산을 오르려면 욕심을 내기 전에 내 몸, 내 호흡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산은 좋고 나쁨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돌산은 돌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숨을 쉬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고, 흙산은 부드러운 흙길에 싱그러운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서 좋다. 돌산은 독특한 나무를 키워주고, 흙산은 웅장한 나무를 키워준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습니다.




신준환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수목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다시, 나무를 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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