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사 세존 사리탑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손신영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광해군 생모의 원찰이었던 봉인사
경기도 남양주 봉인사는 애초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원찰이었다. 광해군이 집권 2년 차에 후궁 신분으로 요절한 어머니를 왕비로 높이고, 무덤을 왕릉으로 만들면서, 인근 봉인사를 원찰로 삼았다. 광해군 원찰이 된 것은 이로부터 120년 뒤인 영조대왕 때이다.
궁궐을 화려하게 지은 것이 폐위 사유가 되었던 광해군이기에, 생모의 무덤과 원찰에도 최고 기량을 발휘하도록 했음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능에서 묘로 강등된 공빈 김씨 무덤에는 뛰어난 조각들이 지금까지 잘 남아 있다. 그러나 봉인사에는 광해군 시대를 짐작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1887년 왕실 축원 기도 중에 발생한 화재로 불전 대부분이 타버렸고,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이천응이라는 자가 그나마 남아 있던 노전과 대방을 팔아버려 터만 남게 된 탓이다.
현재의 봉인사는 한길로 법사의 노력으로 옛터에 중창되었다. 마을버스가 앞마당까지 들어와 편하긴 하지만 어수선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1,250분의 석조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는 불단 너머로 석등과 비석이 자리한 고즈넉한 마당에 이르게 된다. 석등과 비석 가운데 자리한 탑은 형태가 독특하다. 팔각 평면의 지대석 위로 석조 난간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안쪽에 불상 대좌처럼 보이는 받침석 위에, 둥근 공 모양을 아래위로 자르고 표면에는 용 조각이 된 탑신, 그 위로 지붕돌과 상륜부가 얹혀져 있다. 안내판과 석비에 따르면 ‘봉인사 사리탑’인데, 사리기·탑비 등과 함께 보물 928호로 지정된 ‘봉인사 세존 사리탑’의 복제품이다.
기억 속 문화재가 된 봉인사 세존 사리탑
봉인사 세존 사리탑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87년, 국내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복원 전시되었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보수 후 전시할 대상’에 포함되어 수장고로 들어간 이후로 아직까지 전시하지 않고 있어 기억 속 문화재가 되어버렸다.
기록에 따르면 봉인사 세존 사리탑은 1907년, 이환송과 이호영의 공모로 불법 반출되어 일본인 변호사 이와다 센소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환송은 인근 견성암에 머물던 스님으로, 문화재 불법 반출죄로 징역형을 살았다. 그러나 이호영은 처벌 사항이 확인되지 않는다. 1907년 당시 담양 군수로 재직하며, 의병들에게 암살 위협을 받을 정도로 친일에 앞장섰기에 처벌을 면하게 된 것 같다.
이호영은 구한말 삼한갑족, 경주 이씨 백사 이항복의 9대손인 이유원의 서자이다. 전국 10대 부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이유원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문에 관운과 재운까지 다 좋았지만, 자식운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정실에게서 난 큰아들 수영, 첩실에게서 난 두 아들 호영과 표영이 있었는데, 수영이 고위직으로 출세하자마자 스물셋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서자가 둘이나 있었지만, 12촌 동생 이유승의 둘째 아들 석영을 어렵사리 양자로 들인 후, 전 재산을 물려주었다. 이석영은 물려받은 재산을 팔고, 이시영·이회영 등 친가 형제들과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유원의 땅이었던 남양주 진위면 가곡리에는 ‘가곡 대감(이유원)의 아들이 악질 친일파였는데 방탕해 전 재산을 날렸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이유원의 가문을 계승한 이석영이 전 재산을 팔았고, 서자인 이호영이 ‘토착 왜구’, 즉 자생적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혼재된 것이다. 봉인사 세존 사리탑은 1927년 일본으로 반출되어 반환되기 전까지 오사카시립미술관 야외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와다 센소의 사후 반환되었다. 아쉬운 것은 1987년 2월 반환될 당시까지 봉인사에는 이 사리탑을 받쳤던 지대석이 남아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 가져가 반환된 사리탑을 받치도록 했다는 점이다.
최근 성보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는 불교계의 화두이고 곳곳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봉인사에서도 유념해볼 일이다.
손신영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제주대학교 외래교수이다. 한국 전통 건축을 근간으로 불교미술을 아우르는 통섭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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