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3
정토불교에서의 믿음
보광 스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신심과 원력의 중요성
부처님은 출가자들에게는 수행 중심의 정법(正法)을 당부하며 아라한이 되라고 했고, 재가자들에게는 호법(護法)을 당부하며 교단을 외호하도록 했다. 또 삼보를 공양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복을 얻도록 하는 복전(福田)을 가르쳤으며, 이를 통해 생천(生天), 즉 극락왕생(極樂往生)한다고 했다.
초기 불교의 복전으로 인해서 생기는 생천의 결과가 대승불교에서는 왕생사상(往生思想)으로 발전했다. 초기 불교는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유일한 부처이고 유일한 보살임을 말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초역사적인 불보살인 여러 명의 부처와 여러 명의 보살, 즉 제불보살(諸佛菩薩)이 출현하게 된다. 이런 대승불교의 제불보살 출현과 발전은 아뢰야식 연기설과 진여 연기설에서 말하는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에 이론적인 기반을 둔다.
대승불교에서는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신심과 원력이 없다면 대승불교를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초기 불교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신심과 원력이 있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각 불보살에 대한 원력이 세분화된다.
아미타불과 극락세계
극락정토의 장엄은 아미타불과 극락대중에 대한 정보장엄(正報莊嚴)과 극락세계의 환경적 요소인 의보장엄(依報莊嚴)으로 구분된다.
정토학에서 장엄(莊嚴)은 아름다운 존재를 의미한다. 존재가 없으면 장엄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토학에서는 존재라는 단어보다 장엄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 장엄이 이미 존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닌 아름답게 꾸며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극락정토를 장엄의 세계라고 한다. 이 장엄은 인연과보(因緣果報)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이다. 노력 없이 장엄이 이루어질 수 없다. 장엄은 보살의 수행 노력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장엄은 그 세계를 아름답게 꾸민 것, 즉 이상세계로 만든 것이다.(보광(한태식) 공저, 「스님이 보는 극락세계」, 『유토피아 인문학』, 석탑출판, 2013, p.54~55)
장엄은 연기론에 기반으로 두고 이루어진 세계이다. 정토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건립된 극락정토의 장엄 세계를 말한다. 그 기본은 법장비구의 출가와 원력에 의해서 성취한 아미타불의 성불과 48가지 서원이다. 이는 법장비구가 출가해 법장보살로서 48대원을 세우고 이를 성취해 아미타불로 성불한 구원의 부처님과 아름답고 미묘하게 건립된 극락정토를 말한다. 그런데 그 존재를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이 나라에 갈 수 없다. 믿고 가기를 원하는사람만이 갈 수 있다.
정보장엄은 법장보살이 성불해 극락정토를 이룰 때 10겁 전에 210억 국토를 다니면서 5겁 동안 사유해 이루어진 세계이다.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법장法藏 비구가 수행하던 때의 부처)이 설법할 때 그 나라 국왕이 설법을 듣고 청정한 이상국토 건설을 위해 출가해 법장비구가 되었고, 뒤에 법장보살이 되어 48원을 세우고 ‘만약 나의 이러한 원이 성취되지 않으면 저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48대원이 성취되어 법장보살은 아미타불로 성불했다. 아미타불은 Amita-bha(無量光)로서한량없는 지혜광명의 부처님이고, Amita-yus(無量壽)는 한량없는 생명실상의 부처님이다.
한편 『관무량수경』 제9 진신관에서 말하기를, 아미타불의 광명은 하나하나의 털구멍마다 무량한 빛이 나고 그것이 후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광명 속에는무수한 화신불이 출현하며, 광명을 비추어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광명을 통해서 중생들의 마음가짐과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볼 수 있으며, 이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한다. 아미타불은 광명을 통해 염불하는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거두어주신다(염불중생 섭취불사念佛衆生 攝取不捨). 이는 정토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이다. 오늘날 모든 정보가 빛을 통해 전달되는 것과도 같은 시스템이다.
중생들이 이를 믿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 나라에 가서 나기를 원해야 극락왕생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곳이 있다지만, 본인이 이를 믿지 않고 가려고 하지 않으면 가서 볼 수 없다. 정보장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모든 불교의 기본이 믿음을 근본으로 삼고 있지만, 특히 정토불교에서는
신심과 원력이 중요하다. 정토교의 신앙적 구조는 믿음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이루어진다. 아미타불의 본원력과 임종내영원의 믿음은
현생에 대한 마음의 평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
Ⓘ 주불인 법장보살이 성불해 무량광불 무량수불인 아미타불로 되었다.
② 시기는 석가모니불이 설법할 때이고, 우리가 『무량수경』을 읽을 때이다.③ 방향은 서방이다. 『관무량수경』의 제1 일상관(日想觀)에서는 해가 서쪽으로 지는 쪽을 말한다. 이때 천문학적인 관점과 불교적인 우주관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적인 관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굳이 말한다면 태양계를 중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④ 거리는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이다. 일본 수학자의 계산으로는 10의 17제곱이라고 하는데 10경 광년의 거리이다. 즉 10억 개의 천체를 지나간 먼 곳이지만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하면 손가락 튀기는 사이인 탄지간(彈旨間)에 갈수 있다고 한다.⑤ 그 나라 이름은 안락(安樂)이라고 하는데 이를 극락(極樂), 안양(安養)이라고 하고, 범어로는 Sukha-vati라고 한다.『아미타경』에서는 ‘10만억 불토를 지나 극락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으니 거기에는 아미타불이 계시어 지금도 법을 설한다’고 한다.⑥ 의보장엄은 극락세계의 환경과 생활 상태 등 물질적인 장엄을 말한다. 『정토삼부경』에서는 정보장엄보다 의보장엄에 대해 많은 부분을 말한다. 그곳은 물질적인 절대풍요의 세계이다. 불교인들은 이에 대해 유심론적으로 해석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달리 생각한다. 이시우 교수는 ‘오히려 천문학자들은 불교의 우주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있지만, 불교인들 중에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믿지 않고 마음의 극락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이시우 『천문학에서 본 불교우주관』 『정토학연구』 14집, 한국정토학회, 2020. 12, p.160)
본원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법장보살이 48대원을 세울 때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아설득불設我得佛)… 이러한 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불취정각不取正覺)’라고 했다. 법장보살은 아미타불이 되었으므로 48대원이 모두 성취되었다고믿는다. 이를 본원력(本願力)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제18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과 제19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 제20 회향개생원(回向皆生願)이 중요시되어 본원 중에도 본원이라고 불린다. 제18 십념왕생원은 ‘① 지극한 마음으로(지심至心) ② 믿기를 좋아하여(신요信樂) ③ 나의 나라에태어나고자 하여(욕생아국欲生我國) 십념 정도(乃至十念)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십념은 수행자가 마음을 집중해서 열 가지를 생각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지심,신요, 욕생아국을 삼심(三心)이라고 해 염불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으로 본다. 지심은 지극한 마음, 성실한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다. 신요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욕생아국은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이고, 이는 모든 염불 공덕을 중생들에게 회향해 함께 왕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십념 정도를 하면 반드시 극락왕생한다고 했다. 이 십념은 임종십념이다. 곧 임종 시에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극락왕생한다는 믿음이다.
제19 임종현전원은 염불하는 사람의 임종 시에 아미타불이 권속들을 거느리고임종 행자를 맞이하러 온다는 믿음이다. 제20 회향개생원은 모든 염불의 공덕을 중생들에게 회향해 극락왕생하도록 한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염불에는 위의 삼심이 중요하다.
원효 스님이 강조하는 믿음
원효 스님은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에서 왕생의 직접적인 방법(正因)은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일(발보리심發菩提心)이며, 간접적인 방법(助因)으로는 염불이라고 했다. 정인을 발보리심이라고 한 것은 발심이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정토와 아미타불에 대한믿음을 내는 것이다.
원효 스님은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에 대해 중생들이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는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으므로 중생들은 믿어야 한다고 했다. 즉 우러러 믿을 뿐이고(앙신仰信), 오로지 엎드려서 믿을 뿐이며(일향복신一向伏信), 마땅히 믿어야 한다(응신應信)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믿지 않고 반신반의하면서 염불하는 사람은 극락에 바로 가지 못하고 극락의 변두리 밖인 변지(邊地)에 태어난다고 했다. 반면에 우러러 믿는 사람은 네 가지 의혹을 가진 범부라 할지라도 정토에 왕생한다.또한 『유심안락도』에서는 ‘법장비구의 48대원은 먼저 일체 범부를 위한 것이고,다음으로 삼승성인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토종의 본의는 본래 범부를
위한 것이고, 겸하여 성인도 위한 것이다.
신심과 원력의 정토불교는 불교의 존재 가치
모든 불교의 기본이 믿음을 근본으로 삼고 있지만, 특히 정토불교에서는 신심과 원력이 중요하다. 정토교의 신앙적 구조는 믿음과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이루어진다. 『정토삼부경』에 의하면, 분명히 극락의 방향과 거리, 생활 상태, 환경 등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인들조차 이를 관념적이고 유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며, 극락과 아미타불의 존재에 대해서 믿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천국의 존재를 알기 위해 신부들은 천문학을 연구했고, 폴란드의 성직자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것이 천문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 대한 존재를 증명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경전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약 불교에서 정토의 세계를 믿지 않고 부정한다면, 오늘날 불교의 종교적인 존재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면 불교의 내세관은 부정되고 말 것이다. 수많은 천체의 은하계 속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고는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이다. 아미타불의 본원력과 임종내영원의 믿음은 현생에 대한 마음의 평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고령화 시대에 삶의 질을 높인다.
보광 스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대학원을 수료하고, 일본 교토 불교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동 불교대학장 및 동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청계산 정토사 회주, 동국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대각사상 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에는 『용성선사연구』, 『신라정토사상의 연구』(일본판), 『신앙결사연구』 등 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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